![]() 에우리피데스 (Euripides, BC 484?~BC 406?) 아테네 출생. 므네사르코스의 아들로 3대 비극시인 중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보다 뒤에 출생하였으며, 그의 전기적 자료는 다른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빈약한 데다가 소크라테스와 같이 당시에 여러 모로 문제가 되었던 인물이어서 여러 가지 추문이 유포되어 있지만 사실 여부를 가려내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그가 토박이 아테네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같은 이름으로 극작가가 된 셋째 아들을 비롯, 아들 3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BC 455년 극작가로서 극단(劇壇)에 데뷔하였고, 그 작품 총수는 92편이라고 전한다. 만년(BC 408?)에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의 아르켈라우스왕 궁정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2년 후에 죽었다. 오늘날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작품의 총수는 19편인데, 그중 《레소스 Rhēsos》는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이 아니라고 간주된다. 그 나머지 18편 중에는 유일하게 완전히 전해지는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 Kyklōps》도 포함된다. 소포클레스를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생각하는 견지에서 본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여러 면에서 정통을 벗어나 오히려 데카당스적 요소를 다분히 지닌 작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소피스트의 세례를 받은, 당시로서는 대표적인 진보적 사상가의 한 사람이며, 그 사실은 작품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실성(寫實性)과 아이러니를 내포한 합리적 해석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프롤로그나 국면해결을 위해 막바지에서 신(神 : 데우스 엑스 마키나)을 등장시키는 장치 ·수법 등 극적 수법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고안이 시도되어, 그리스 비극은 그와 더불어 커다란 변모를 이루었다. 상연 연대가 분명한 작품으로는, 《알케스티스 Alkēstis》(BC 438) 《메데이아 Mēdeia》(BC 431) 《히폴리토스 Hippolytos》(BC 428) 《트로이의 여인 Trōades》(BC 415) 《헬레네 Helenē》(BC 412)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Iphigeneia he en Taulidi》(BC 405) 《바카이 Bakchai》(BC 405) 등이고, 그 밖에 《안드로마케 Andromachē》 《헤라클레스의 후예 Hērakleidai》 《헤카베 Hekabē》 《구원을 청하는 여인들 Hiketides》 《엘렉트라 lektra》 《발광한 헤라클레스 Hēraklēs mainomenos》 《타우로이의 이피게네이아 Iphigeneia en Taurois》 《이온 Ion》 《페니키아의 여인 Phoinissai》 등이 있다.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생전에는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2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 정든 이와의 이별, 그리고 이어지는 새로운 만남. '결코 끝나지 않음'이야말로 이 세계의 확실한 속성이다. 그리움이 있어 비로소 나는 행복하다. (2007년 9월 1일, 강변북로) ![]() 오른쪽으로 브레이크하며 애프터 버너에 점화하는 F-15C 이글 전투기.
배기구의 백열광이 번쩍 빛나며 급격히 파워를 올리는 제트 엔진은 하늘 가운데에 한껏 으르렁거렸다. 마치 심장에서 땀방울이 솟아오르는 듯한 그 소리가 너무나 그립다. (2007 서울 에어쇼, 오후 데몬스트레이션 플라이트에서) In the Dark 2007 DJ Tiesto, Feat. Christian Burns ![]() 내게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기억되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57년 작, 콰이강의 다리. 극중 영국군 포로들이 행진하며 부는 휘파람 소리가 워낙 유명한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7년에 제작되었는데, 요즘 영화에 비해 특수효과는 당연히 떨어지지만 그 스케일이나 완성도는 매우 훌륭하여 아카데미상 7개부문을 휩쓴 것 만큼이나 걸작영화에 반열에 당당히 들 만하다. 클래식 '스타 워즈' 시리즈에서 오비원 캐노비 역으로 잘 알려진 알렉 기네스가 영국군 포로들을 이끄는 니콜슨 대령 역을 맡았고, '벤 허'에서 벤허의 양아버지가 되는 로마의 아리우스 장군 역을 맡았던 잭 호킨스는 다리를 폭파하러 오는 영국군 소부대의 워든 소령 역으로 나온다.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시 다리를 폭파하러 돌아가는 미국인 쉬어즈 소령 역은 윌리엄 홀든이 맡았다.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대, 일본군은 아시아의 영국군 세력의 중핵인 인도를 공략하는 작전의 일환으로 방콕과 랭군을 있는 장거리 수송 철도를 밀림에 건설하고 있었다. 이 공사의 한 부분이었던 콰이강 계곡 다리 건설현장에 노동자로 투입될 영국군 포로들이 수송되어 온다. 포로수용소장이었던 일본군 사이토 대좌는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으며, 그를 위해 한 명의 인력이라도 더 투입하기를 원하지만, 영국군 대표인 니콜슨 대령은 전쟁포로에 관련된 협약인 제네바 협정의 규정상 장교들을 노동에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맞선다. 이 틈을 타 미군인 쉬어즈는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엄격하지만 인간미를 갖춘 사이토 대좌는 니콜슨 대령에게 자신의 뜻을 꺾고 다리 공사의 주도권을 영국군 포로들에게 넘겨 준다. 니콜슨 대령은 철저한 군인정신을 발휘해 포로들을 이끌어 오히려 일본군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효율적으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하게 된다. 포로수용소의 영국군 의사는 니콜슨 대령에게 일본군의 다리 건설을 돕는 행위는 사실상 반역이며, 규정상 노동을 피할 수 없다고는 해도 굳이 일본군보다 더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니콜슨 대령은 그 말을 무시한다. 그의 목적은 일본군에게 영국군의 능력과 명예, 그리고 자존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한편 인도 주둔 영국군 사령부는 일본군의 전진을 막을 작전을 구상 중이었으며, 그 구상 중 하나에는 일본군의 철도 건설 저지를 위해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 계획이 있었다. 워든 소령을 지휘관으로 한 특수 부대가 편성되었고, 그 곳을 탈출해 나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쉬어즈 소령이 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그 사이 다리는 무사히 완공되었으며, 영국군 포로들이 축하의 밤을 보내는 가운데 사이토 대좌는 명예를 위해 자결을 결심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영국군 특수부대는 다리에 도착, 밤중에 폭약을 설치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다리 개통식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는 첫 기차를 기다리던 니콜슨 대령에게 이 사실을 들키게 된다. 니콜슨 대령은 다리에 무언가 수상한 것이 있다며 사이토 대좌를 데리고 폭약이 설치된 도선을 따라가게 되고, 워든 소령 일행은 아군이 오히려 폭파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그 장면에 경악한다. 멀리서 일본군의 VIP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서로 죽고 죽이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니콜슨 소령은 다리를 폭파하러 온 일행 중에 이미 수용소에서 안면이 있던 쉬어즈가 다리 폭파를 멈추려는 자신을 저지하려다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마치 꿈을 깨듯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이미 그도 총에 맞은 상태였으나,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니콜슨 대령은 끝까지 자신의 몸으로 폭파 스위치를 누르며 숨을 거두게 된다. 결국 다리는 폭파되고, 일본군의 기차는 허망하게 강물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강 옆 언덕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던 영국군 의사가 "미쳤군, 미쳤어.." 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주어진 상황에서 능력껏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당면한 상황 속에만 집중한 나머지 최종적인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것은 현명함과 무지함만의 문제는 아니며, 매우 어려운 딜레마이다. 영화 중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의사로써 적군 부상자를 수술해야만 하게 된다면, 당신은 최선을 다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당면한 문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명예로운 일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상황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 속에서 다양한 판단을 내리는 가운데, 늘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치와 신념의 깃발"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으면서도 옳지 않은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람들을 이끌게 될 때에는, 그리고 더욱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들에게 많은 권한을 나누어 줄 때라면 이와 같은 생각의 공유가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시시각각 해야 하는 선택과 결정은 결코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영동 민주지산 삼도봉(三道峰 : 1,177m) 아래 헬기장에서, 아득히 남덕유산으로부터 내 쪽으로 쇄도해 오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굽어보았다. '물결이 일듯 산봉우리가 두루 펼쳐져 있다'는 뜻이라는 민주지산(岷周之山)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문장으로 된 이름이 붙은 산이다. 주봉이자 최고봉인 민주지산의 높이는 해발 1,241.7m 이며, 물이 지극히 차고 폭포와 소(沼)가 많아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물한(勿閑)계곡을 품고 있다. 또한 주릉의 산군으로는 각호산(1,176m), 석기봉(1,200m), 그리고 삼도봉(1,177m)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줄기의 봉우리인 삼도봉은 말 그대로 3개 도의 접경 지점으로,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이 만나는 봉우리이다. 그래서 그런지 3도의 대화합을 상징한다는 - 약간은 오버스러운 - 커다란 조각 탑이 서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지평선 멀리 덕유산으로부터 대덕산으로 이어져 오다가 황악산 방향으로 북상,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 그리고 경부고속철도가 일제히 대간을 넘는 영남의 큰 관문인 추풍령(秋風嶺)으로 향해 가는 백두대간의 몸짓이 연출하는 웅장한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가을의 소백(小白) 주릉과 겨울 태백(太白) 이후로 나는 다시금 백두대간에 올랐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오후의 햇살 아래 골짜기마다 흰 눈 이불을 덮어쓴 채, 그렇게 내 앞에 길게 누워 있었다. 도시(都市)의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늘 망령처럼 나의 발목을 붙잡곤 하던 지독한 어지럼증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바람마저 잔잔했다. 커다란 갈림길 앞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조용히 배낭을 내려놓고, 곁에 두 개의 등산 스틱을 세워 둔 채 나는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 이 장면을 보고 내 머리에 늘 떠오르는 키 워드는 하나였다. 'Mission Successful. Returning to Base'.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이 장면(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대관절 곡절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그 연유인 즉슨, 이제 다시 진흙탕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나의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이제 모험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현실과 내 자신의 끈을 잇는 반가움이 교차하는 매우 즐거운 장소이다. 특히 깜깜한 밤에 경부고속도로 양재 톨게이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형 전광판의 영롱한 주황색 글씨, '어서 오십시오, 우리의 서울입니다.' 라는 멘트는 그 컬러의 따뜻함과 더불어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회와 흥분을 선사한다. 그런 톨게이트를 보고 기분이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실제 도착 지점에서 아직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 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자던 잠을 깨고,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면서 짐을 정리하는 등 벌써부터 내릴 준비를 한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리는 사람도 있고 이래저래 차 안은 약간 분주해진다. 장거리 여행일수록 그 분주함의 수준도 높아지는데, 나는 마치 새로운 학생이 전학을 온 듯한 그런 술렁임을 무척 좋아한다. '카우보이 비밥'에 나오는 게이트의 출구 역시 분명히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메타포로 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두운 밤에 장거리 고속도로 여행을 하다 보면, 길이 마치 터널이나 하이퍼스페이스의 워프 포인트처럼 공간과 공간을 잇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딱 카우보이 비밥의 스페이스 게이트 분위기라고나 할까. 여행을 하다 보면, 그리고 여기저기로 뻗어 있는 다양한 길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크게 나누는 포인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꼭 우주여행 같은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도, 길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재미를 느끼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기분이 아무리 그립고 좋아도, 떠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 그 기분이다. 떠날 수 있으려면,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사람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 중앙지도 발간, 1:150,000 한국도로지도 (2006년 8월 수정판), 29페이지 수원(SUWON) 지형도는 보통 1:25,000 이나 1:50,000 스케일로 표시되는 대표적인 대축척 지도로, 좁은 지역을 상세히 살펴보기에 좋은 지도이다. 그래서 등산이나 탐사 등 도보로 이동하는 수준의 거리를 살펴보기는 좋지만, 자전거나 자동차 등을 이용해 하루 100km 이상의 거리를 고속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불필요하게 자세한 지도가 되겠다. 토끼를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이 낭비이듯, 지도란 자세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며, 용도에 맞지 않은 지도는 오히려 자꾸 페이지를 넘겨야 하거나 여러 장을 무겁게 휴대해야 하므로 상황에 맞게 적절한 지도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짤 때에도 한 종류 축척의 지도만을 사용하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축척의 지도를 용도에 맞게 적절히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접근(어프로치)용 지도는 소축척-중축척으로, 현지의 상세도는 대축척으로 하는 식으로. 그래서 도로여행용 지도는 보통 1:200,000 정도의 중축척으로 표시된 지도가 많으며, 근래 지도판매소나 서점에 가보면 그보다는 좀더 자세하게 1: 180,000이나 1:150,000 정도의 스케일로 된 지도가 많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중축척이라는 것은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므로, 조금 상세히 들여다 보면 지도책마다 나름 미묘하게 표시된 정보의 특성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지도는 우선 길을 잘 찾아내서 여행 계획을 충실히 짜고 수행하는 용도에 가장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변 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잘 정리된 인덱스를 가지고 있는 검색 엔진과도 같아서, 더욱 유연하게 여행 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아래에 다시 소개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에도 나오지만, 우선 이름을 알아야 (뒤에서라도) 부를 수가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부를 수 있어야 의미도 있는 것이다. 서점의 지도 코너에 가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지도가 진열되어 있다. 도대체 이 중에서 나에게 적합한 지도책은 무엇일까? 지도책이란 물건은 썩 저렴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더욱 선택하기가 어렵다. 정말 잘 모르겠다면, 이런 기준을 마음에 담고 한번 선택해 보자. 1. 필요한 정보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는가? - 예를 들어 관광지 중심의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면 관광지 표시가 자세히 되어 있는 것을 고르는 식으로 선택한다. 2. 도로를 쉽게 찾을 수 있고 표시된 정보를 종류별로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가? - 지도의 색과 디자인에 따라 도로가 잘 보이는 수준, 그리고 항목 간의 구분도가 차이가 있다. 특히 도로의 번호와 구간별 거리 등이 잘 표시되어 있는 지도는 자전거 여행 계획용으로 대단히 편리하다. 3. 페이지가 적당히 넓고 커서 한 면에 많은 영역을 볼 수 있는가? - 페이지 수가 적을수록 한눈에 찾기 쉬우며, 지도의 부피도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러나 책이 너무 커지면 불편하다. 4. 인덱스 사용이 편리하고 불필요한 정보가 적은 간결한 편집인가? - 페이지를 넘기면서 미묘하게 길을 따라가기 어려운 지도도 있다. 또한 늘 휴대하는 지도이므로 꼭 필요한 정보만 간결하게 나온 것이 편리하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최신 업데이트가 수록된 지도이면서도 가격이 저렴하고 무게도 가벼운 지도가 좋겠다. 지도는 소장품이 아니라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늘 가지고 다니다보면 쉽게 낡고, 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메모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놀라운 것은 새 지도를 사면 길어야 1년 반 이상만 지나면 새로운 지도가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전국에 새로 길을 내고 보수하는 속도가 실로 엄청나게 빠르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근성이란 ^^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지도는 상시 휴대할 물건으로, 나의 몸과도 같은 물건이다. 그래서 신중히 선택해야만 사용하기 편해 더 자주 보게 된다. 근데 지도 판매대에 가 보면 하드커버로 되어 쓸데없이 비싸면서 무겁기만 한 무개념 지도책도 있고, 크지도 조그맣지도 않은 어정쩡한 사이즈로 만들어서 휴대에 편리한 것도 아니면서 한두 시간만 차를 달려도 여러 장을 넘겨야 하는 지도도 있다. 또한 고속도로는 크게 표시되어있는데 상대적으로 국도와 도로번호는 찾기 어려운 것도 있다. 부록이나 디자인에 현혹되지 말고 정말로 내 용도에 맞고 '지금 당장' 사용하기 편한 지도인지만 생각해야 한다. 지도 편집의 역사를 보관할 것이라면 몰라도 오랫동안 두고 볼 지도책 따위는 없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지도는 소장품이 아니라 소모품이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지도 역시, 표지 디자인이나 지도를 그린 색 등은 다소 내 취향과 맞지 않지만, 막상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정말로 선택하기를 잘 했다고 느껴지는 간결하고 훌륭한 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2008년 버전으로 두 번째 업데이트 버전을 사용하고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 김정호 선생님의 대동여지도 역시 현세의 도로여행지도에 많이 사용되는 스케일에 매우 유사한 스케일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우리 옛 어른들의 현명함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N37 27.679 E128 33.795 가리왕산(加里旺山). 원래는 갈왕산이라는 이름인데, 일본인들이 가리왕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한다. 이 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으며, 최고봉은 해발 1,560m의 높이로 오대산에 이어 남한에서 11위, 산 전체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진 전형적 육산(肉山)이다. 수량이 풍부한 계곡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대중적으로 찾는 산이 아니어서 산 전체에 풍부한 원시림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정상부는 널따른 광장처럼 평평하며 주변 조망도 매우 좋댄다. 주 능선도 크게 오르내림이 없고 넉넉하며 야생화와 나물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정보이다. 산 아래에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 자연휴양림도 있고, 고도 800-1,000m 높이에서 약 80km 길이로 산을 빙 돌아가는 임도가 나 있어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매우 좋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정상부 적설량이 허리까지 빠지는 수준으로 눈도 무척 많이 내린다. (이후에도 실제로 산행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 가리왕산은 정상의 높이로 남한 11위에 해당하는 산으로, 규모가 제법 큰 전형적인 육산이다. ![]() 물은 대단히 차고 맑았는데, 안내지에는 한여름에도 물이 매우 차니 심장마비에 조심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어은골 계곡의 바위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 끼어 있어서, 수림이 울창해지는 여름철 풍경이 궁금해졌다. ![]() 산림청 소속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야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 '세상의 술이 한 번의 산행만 못하다' 라는 뜻인가보다. 흥취를 내는 건 좋은데, 그래도 낙서는 좀... ![]() 가리왕산은 원시림이 잘 발달되어 잡목이 많고 울창한 숲 덕인지 엄청난 양의 낙엽이 떨어져 있었다. 호젓함은 일품이었으나, 그 덕에 희미한 길은 더욱 희미해졌고 나는 자꾸만 등산로를 벗어나고 말았다. ![]()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눈 층은 차차 두꺼워져 급경사의 좁은 능선길에서 나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 가리왕산은 숲을 관리하는 임도가 산을 빙 돌며 여기저기 뻗어 있는데, 길이가 무려 100km 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길이가 워낙 길고, 도로 상태가 좋은데다 급경사가 썩 없어서 산악자전거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 이곳부터 경사는 더욱 급해지고, 눈과 낙엽, 진흙탕으로 뒤범벅인 지루한 지그재그 오름이 계속 이어진다. 나는 이곳에서 한참을 더 진행해 정상 바로 직전인 전위봉까지 올랐으나, 희미한 눈길과 잡목숲 덕에 안타깝게도 여러 번 길을 헤매느라, 이곳까지 오는데에 시간을 너무 소모하여 정상까지 불과 고도 백 미터를 남겨두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덕에 가리왕산은 내가 처음으로 등정을 포기하고 후퇴한 산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예전의 태백산은 이미 등정 경험이 있었고 야간 길 찾기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밀어붙였었으나, 이 가리왕산은 조금 경우가 달랐고 비상용 장비를 거의 가지고 오지 않은 관계로 절대 무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내가 산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가 보기 좋게 소박을 맞은 꼴이 되었다. "절정의 노래"- 이성선 作 -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 가장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 그곳에서 모두를 하늘에 되돌려주고 한 송이 꽃으로 가볍게 몸을 벌리고 우주를 호흡하리 산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목숨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꺼이 거기 몸을 묻으리 영혼은 바람으로 떠돌며 고절(孤絶)을 노래하리 그곳에는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당당히 태양을 향하여 무(無)의 뼈대를 창날같이 빛낸다 침묵의 바위가 무거운 입으로 신비를 말한다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에서 무일푼 거지로 최후를 마치리. ![]() 꽃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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