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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 혹은 문명의 그늘에서 -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보면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것들을 거대한 사회 기반 시설들을 통해 평소 공기를 마시듯 편하게 얻어가며 생활하고 있으므로 그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끔씩 문명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연과 1:1 로 부딪히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평범한 것들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이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고교 시절에 읽은 수많은 과학 서적들 중 단연코 가장 인상적인 책 중 하나일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Entropy)'를 읽어 보면, 문명이 발달하고 에너지가 집중되는 기구일수록 그 기구로 인한 엔트로피의 증가 폭은 크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 요즘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 DVD 디스크에다 4.3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용량을 몇 분만에 뚝딱 담아 버리는데, 내가 92년 처음 사용했던 인텔 80286 CPU가 장착된 AT 컴퓨터는 주 메모리 용량이 1메가바이트였고 하드 디스크는 40메가바이트였다. 그 하드 디스크의 110배나 되는 데이터를 몇 분만에 CD 만한 원형 디스크에 구겨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보가 집적되면 집적될수록 그것을 읽어 들이는 장치는 필연적으로 더욱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나는 복잡하고 정교한 장치일 수밖에 없으며, 이미 40메가바이트의 하드 디스크 시대의 훨신 이전부터 인간의 오감(五感)으로는 그 장치들에 기록된 데이터를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카메라가 있던 시기도 있었고, 작은 시계용 전지를 넣어두면 몇 년이고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는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최신식 자동 카메라들은 현대의 정밀기계와 전기/전자기술의 총아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며, 그만큼 전력 사용 구조도 복잡해졌고 사용량도 많아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카메라들은 전용의 리튬-이온 방식 충전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카메라 뿐만 아니라 많은 디지털 모바일 기기들이 다 그렇다. 이런 장비들은 전력 소모가 심해 전력 공급이 원활한 환경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만큼 배터리 충전을 자주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고속으로 충전이 가능하고 작은 크기에도 높은 에너지 효율을 내며, 아무 때나 자주 충전해도 배터리 성능에 큰 영향이 없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배터리는 커다란 약점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전용 충전기로만 충전이 가능하고, 가격이 매우 비싸며 추위에 형편없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류의 디지털 장비를 장기간 무지원으로 자연 속에서 사용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전부터 자주 이야기하는 개념이지만, 보급(Supply)의 문제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확하게 산술적으로 계산되며 꼼수의 여지는 사실상 거의 없다.) 물론 다른 이유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군사작전의 개념에서 헬리본(Heliborn : 헬리콥터로 수송가능한 수준의 경무장 병력을 작전 거점에 투입하는 작전) 작전을 계획하는 경우, 일단 적지에 투입된 부대에 대해 헬리콥터가 상시 오가며 보급작전을 수행해 준다고 해도, 작전이 3일 이상 계속되면 부대가 고립되고 전투임무 수행이 어려워질 만큼 보급의 부족 수준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유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무지원 7일간의 작전은 결코 짧은 작전이 아니다.) 니콘 D200 카메라의 경우, 영하로 약간 내려간 온도 상황에서 전용의 충전식 배터리 니콘 EN-EL3e를 사용하는 경우를 보자. Nikon EN-EL3e - 방식 : 리튬-이온 - 용량 : 1,500mAh - 전압 : 7.4V - 무게 : 80g 나의 테스트 결과로는 3프레임씩 오토 브라케팅을 사용해 하루 최대 700프레임 정도를 촬영가능했다. (물론 촬영 직후 리뷰를 하지 않고 최대한 전력을 절약하여 사용하는 경우다.) 이런 페이스로 최소 7일간 무지원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전용 배터리 7-8개 (예비 1개 포함)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용 배터리 8개 가격 : 45.000 x 8 = 360,000 무게 : 640g 그러나, D200에 세로 그립을 장착한 후에는(무게와 부피 상승) 6개 1조로 AA형 충전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는데, 현재 나온 최대 용량인 산요의 2500mAh 용량의 니켈수소(Ni-MH) 배터리를 사용하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1조로 전용 배터리 1.5개~ 2개의 스태미너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용 배터리 8개 분량으로 예비까지 여유있게 5조(30개)를 편성해보자. SANYO HR-3UC-BP4 - 방식 : 니켈-수소 - 용량 : 2,500mAh - 전압 : 1.2V - 무게 : 27g 배터리 30개 가격 : 약 68,000원 무게 : 810g 한눈에 가격 부담의 감소 효과가 엄청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게는 거의 1킬로그램 수준으로 늘어났다. 부피도 2-3배 정도 클 것이므로 리튬 이온 방식의 에너지 밀도가 훨씬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니켈수소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충전 시간이 길고 메모리 효과가 있어 자주 충전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배터리의 수명 관리에 신경을 써야하지만, 이렇게 순차적으로 소모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장점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또한 추위에 상대적으로 더 강하며, AA 형 전지를 사용하는 다른 장비에도 비상시 공용 사용할 수 있다는 강력한 표준 규격의 장점이 있다. 다만, 카메라 자체는 일반 알카라인 배터리로 원활히 동작시키기엔 다소 무리가 있음이 판명되었다.) 카메라도 이럴진대, 이보다 훨씬 더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노트북의 경우에는 문제는 더욱 복잡해져서 꼼짝없이 전용 배터리를 추가로 구입해야만 한다. 여담으로, 옛날의 기계식 수동 카메라라면? 완전 기계식인 Nikon FM2는 LR44 시계용 수은 배터리를 쓴다. 무게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고, 7일간이 아니라 70일간의 여행이라고 해도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여유 배터리 2개 1조만 추가 휴대하면 끝. 배터리 2개의 가격은 1,000원. 실로 우습지도 않다. 반자동식이라고 해도 크게 차이는 안 나며, 완전 기계식의 경우에는 배터리 없이도 노출 감각만 있다면 전체 기능으로 촬영이 가능하다. 왜 오지 탐험에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필름의 무게가 추가되지만, 배터리 무게하고 비교해 봤을때 차이는 여전할 것 같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진다.) 그렇다고 해도 디지털 장비에는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다. 디지털 장비의 가격은 매우 내려갔고 필름의 가격과 후 처리 비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비싸지고 있기 때문에, 총 촬영 비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디지털 장비의 경제성은 웬간해서는 필름 카메라가 따라갈 수가 없다. 솔직히 디지털 장비는 아날로그의 물성치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을 전기로 바꿔 때운다는 느낌이 강하다. 중요한 사실은, 식량은 줄어들지만 이것들의 무게와 부피는 여행을 마칠 때까지 결코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배낭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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