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민주지산 삼도봉(三道峰 : 1,177m) 아래 헬기장에서,
아득히 남덕유산으로부터 내 쪽으로 쇄도해 오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굽어보았다.
'물결이 일듯 산봉우리가 두루 펼쳐져 있다'는 뜻이라는 민주지산(岷周之山)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문장으로 된 이름이 붙은 산이다. 주봉이자 최고봉인 민주지산의 높이는 해발 1,241.7m 이며, 물이 지극히 차고 폭포와 소(沼)가 많아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물한(勿閑)계곡을 품고 있다. 또한 주릉의 산군으로는 각호산(1,176m), 석기봉(1,200m), 그리고 삼도봉(1,177m)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줄기의 봉우리인 삼도봉은 말 그대로 3개 도의 접경 지점으로,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이 만나는 봉우리이다. 그래서 그런지 3도의 대화합을 상징한다는 - 약간은 오버스러운 - 커다란 조각 탑이 서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지평선 멀리 덕유산으로부터 대덕산으로 이어져 오다가 황악산 방향으로 북상,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 그리고 경부고속철도가 일제히 대간을 넘는 영남의 큰 관문인 추풍령(秋風嶺)으로 향해 가는 백두대간의 몸짓이 연출하는 웅장한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가을의 소백(小白) 주릉과 겨울 태백(太白) 이후로 나는 다시금 백두대간에 올랐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오후의 햇살 아래 골짜기마다 흰 눈 이불을 덮어쓴 채, 그렇게 내 앞에 길게 누워 있었다.
도시(都市)의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늘 망령처럼 나의 발목을 붙잡곤 하던 지독한 어지럼증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바람마저 잔잔했다.
커다란 갈림길 앞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조용히 배낭을 내려놓고, 곁에 두 개의 등산 스틱을 세워 둔 채 나는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