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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거리 버스가 좋아요 - 여행의 아우라 (Revised II)
예천 시외버스공용정류장 승차홈. (경상북도 예천군)


나는 직접 차를 몰고 떠나지 않는 장거리 여행에는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기차는 반드시 기차를 타야만 하거나 추석연휴 등 도로교통이 힘들어지는 특수한 상황에만 이용하며, 그 외에는 무조건 버스이다.
사실 정시성 면에서는 기차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서도, 내게 버스가 좋은 이유는 바로 바닥에 널찍한 화물칸이 있다는 것이다. 장거리 여행에는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 혹은 커다란 장거리용 배낭을 꾸리게 마련인데, 이 짐이 워낙 크고 무겁기 때문에 기차의 개인 공간(선반)에 싣기는 민폐도 민폐지만 어림도 없다. 버스는 화물칸에 20킬로그램이 넘는 85리터짜리 배낭도 맘껏 실을 수 있을 뿐더러, 심지어 접을 수 없는 자전거도 - 앞뒤 패니어에 짐까지 가득 실었다 해도 - 실을 수 있다.

버스는 새마을호 이상 비교하면 기차보다 요금도 저렴하고, 도로가 막히면 다소 연착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그 정시성은 대부분의 일반적 상황에서 무척 우수하다. 특히 심야 버스의 경우 오히려 20분 가까이 일찍 도착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고속버스는 정말 정확하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리는 시외버스도 고속버스만큼이나 정확하여 도무지 크게 늦는 일은 없다. 예전에 원주를 중간 경유지로 했던 설악산 백담사행 시외버스에서는 버스가 중간 경유지에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 중간에 한참 휴식한 적도 있다. 기사 아저씨가 '자, 손님 여러분들, 버스가 너무 빨리 와버렸네유~ 식사라도 하시고 천천히 쉬다 오십시오!" 하시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또한, 요즘은 시외버스도 고속버스만큼 고급화되기 시작하면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버스가 서 있는 동안에는 어김없이 버스에 올라와 행운권에 당첨되었다며 시계 등 물품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또한 많은 지역들이 퇴락하면서 버스에 손님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이 경우 가끔은 기사님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시외버스에는 이렇듯 느슨함과 여유로움이 있고, 이것 자체가 여행에서 얻는 또다른 즐거움이 된다.
게다가 버스는 아무래도 기차보다 편성이 더 잦게 되어 있고 목적지에도 좀더 가깝게 접근이 가능하다. (산악 지역이나 시골 지방에는 이 버스가 유일한 장거리 교통수단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역시 버스 바깥의 풍경은 철도 주변의 풍경과는 달리 현지에 더욱 가깝다는 생각이다. 차에서 내려 여행을 시작하느냐, 도착해가면서 슬슬 여행을 시작하느냐의 차이라고나 할까.

버스 중에서는 주로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고속버스가 역시 가장 안락하고 속도도 빠르다. 인터넷으로 전국의 대부분의 터미널에서 버스 예약이 가능하고, 고속버스표는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살 수 있다. 특히 신형 우등 고속버스의 좌석은 너무나 편안한 것이다. 2시간 이상 달려가야 한다면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우등형 버스를 선택하는 것이 편안하다. 그러나 고속버스는 나름 규모가 있는 지역에만 연결되므로, 버스에서 내리고서부터 여행의 메인 테마를 시작해야한다는 점은 사실상 기차와 같다. 좀더 깊숙히 들어갈 경우에는 시외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요즘에는 시외버스도 우등형 차량이 많아 고속버스와 똑같다. 같은 지역으로 가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는 가격도 거의 비슷하거나 같으므로, 도착하는 터미널의 위치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다만, 시외버스는 아무래도 고속버스보다는 예약이 불편해 직접 현지 터미널에서만 표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자유석 표를 팔기도 하는데, 이번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 뒤 다음 버스를 타도 된다는 식으로 어쩐지 좀 느슨하다. 시외버스는 목적지에 따라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가며 최단거리로 이동해서 요금이 다소 저렴한 경우도 있고 지루한 고속도로만 계속 달리는 고속버스보다는 지리를 익히거나 둘러보는 여행의 재미 측면에서 훨씬 낫다.

장거리 버스를 탈 때, 시트를 쭉 눕히고 깜깜한 도로를 달릴 때 등 아래에서 우르릉하고 울리는 디젤 엔진의 굉음이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 힘든 여행을 마치고 버스 화물칸에 -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버스 기사님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 그간의 나의 짐들, 장비가 가득 든 무거운 배낭이나 자전거를 눕혀서 밀어 넣고, 쿵하고 화물칸 문을 닫고 나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또한 버스 터미널 특유의 분위기도 내게는 즐겁다. 특히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출발 전부터 벌써 여행의 아우라가 떠돈다. 도시의 큰 기차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의 분위기가 같다고 하면, 지방의 작은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보다 때가 묻은 구수함이 감돈다. 그래서, 출발하면서부터 이미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또한, 많은 작은 지역들은 정식 터미널이 아니라 규모가 훨신 작은 정류장, 정류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읍내의 작은 매점이 터미널 매표소다!) 
어릴 때에는 도시다운 깔끔 단정함이 좋았으나, 근래에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다. 물론 시외버스 터미널은 고속버스 터미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와 시설이 낙후되어 있어서, 버스가 출입하는 것도 더 복잡하고 이용도 상대적으로 불편하다.

서울에서는 주로 동서울과 남부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게 되는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린 지도 꽤 되었으니 서부지역 터미널도 좀 있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김포국제공항은 전국 주요 도시로 연결되는 버스가 다녀서 작은 터미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항 리무진 익스프레스로 운영되고 있어서 동서울 터미널에 비하면 노선 수가 매우 적고 요금이 비싸다. (100km 남짓한 단거리는 요금이 거의 2배)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에 진입한 버스 안에서 반짝이는 올림픽대교와 테크노마트의 불빛을 바라보며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예전 포스트에서 경부고속도로 양재 톨게이트의 전광판에 나오는 '어서 오십시오, 우리의 서울입니다.'라는 글씨를 보면 모든 여행의 피로가 싸악 가시는 기분좋은 느낌을 받곤 했었다 썼었는데, 그와 같이 '집에 온 느낌'이 새롭게 하나 더 생겼다고나 할까.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러 떠나는 여행이 반드시 세련되고 안락해야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떠남의 설레임과 귀환의 향수. 이런 것 역시 여행의 즐거움일 것이다.



** 참고 : 2008년 8월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저렴하게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무궁화호 철도이다.

by 티티 | 2008/08/05 04:50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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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夢影 at 2007/05/05 19:01
멀미만 없으면요. ㅠ,ㅠ 기차가 좋은 이유는 아무 때나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멀미가 버스보다 덜 난다는 거죠. 그거만 아니면 버스가 참 좋은데. 얼마전에 없어진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 가는 버스 많이 탔었어요. 동서울 터미널이나 남부터미널도 많이 이용하고요. 참 좋죠. 강남고속터미널은 별로 이용해본 적이 없지만요.
Commented by 스컬릿 at 2008/08/06 09:43
귀환의 향수라....여행은 떠남만이 존재하는 나로써는 그걸 잘 느끼지 못하는데, 그런건 있다. 나와 30년 가까이 함께 숨쉰 공기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떠나고 싶소!
Commented by 티티 at 2008/08/06 12:30
귀환을 해야 또 떠나지...
떠나는 일은 '떠날 수 있어야' 즐거운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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