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styl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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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60리 덕유산 종주 여행기 (2007년 9월)
작년 추석 때의 덕유산 여행기를 블로그에는 이제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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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 서울-전주-육십령
몹시 분주했던 센트럴시티 호남선 승차홈.

집에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영등포 정수사업소 앞에서 642번 시내버스로 강남고속버스 호남선 터미널에 도착. 새벽인데도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추석 귀성 바람을 실감케 했다. 분주한 미니스톱에서 차가운 생수를 한 병 사서 6시 50분에 출발하기로 되어있는 전주행 고속버스 승차홈에 들어갔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명절 연휴에 처음 고속버스 터미널에 와 본 것이지만, 정말 대단히 붐볐다. 사람도 많고, 화물 카트를 운반하거나 버스를 유도하는 직원들도 정말 바빠 보였다. 버스 출발 시각도 많이 늦어졌고 회사별로 버스가 들어오는지라 출발 순서가 뒤바뀌어 오기도 했다. 내가 탈 동양고속 버스는 무려 30분 가까이 늦은 7시 24분에 겨우 승차홈에 들어왔다. 곳곳에 버스시간 지연에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뭐... 이 경우 사실 그렇게까지 항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되는 것을 보면... 나도 역시나 한국 사람이라 그런가...

아무튼 배낭을 화물칸에 밀어넣고 탑승, 미리 잠을 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짐을 패킹했던지라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눈을 붙였다. 전망을 위해 1번 좌석을 선택했는데...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 있었다. 표값이 싼 일반고속버스인 대신 1번 좌석은 레그룸도 좁고 그물포켓도 없어서 대단히 불편했던 것이었다. (어쩐지 예약이 비어 있더라! ) 중간에 잠을 깼는데 틈틈이 정체가 이어졌으나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추석 연휴치고는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비가 내렸고 날씨가 예상보다 썩 좋지 못하다는 생각에 계획된 산행 일정이 다소 걱정이 되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상태에서 버스는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휴게소는 벌써 초만원이었다. 나는 간단히 볼일을 보고 매점의 튀김닭꼬치가 맛있어 보여 간식으로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일기예보가 또 틀렸다고 불평했다.

심하게 정체중인 호남고속도로 하행.

다시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버스전용차로를 타고 호남고속도로가 분리되는 회덕분기점 부근인 신탄진까지 시원스레 달렸다. 그래도 중간중간 지루한 정체구간들이 계속 이어졌으나 추가로 소요된 시간은 처음 예상한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지루한 풍경에 다시 눈을 붙인 사이 버스는 이미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전주 톨게이트에 들어가고 있었다. 전주 톨게이트는 하얀 기둥의 기와집 모양에 멋진 한글 필체로 ‘전주’라고 씌어진 커다란 현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톨게이트를 지나면 커다란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 나를 맞이한다. 그동안 여러 번 이곳을 통과했지만, 이 톨게이트는 내가 여태 다녀 본 우리나라의 모든 고속도로 톨게이트 중 가장 멋지다. 역시나 ‘예향(藝鄕)의 도시’ 전주답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의 버스 대기장.
다소 유치해 보일 정도로 알록달록한 버스 색깔이 재미있었다.

고속버스는 전주터미널에 11시 50분에 도착. 보통 소요되는 시간의 2배 가량인 약 4시간 30분 걸렸다. 여행을 할때 보통 3시간 이상 버스를 타게 되면 비용을 조금 더 들어도 좌석이 편한 우등버스를 이용했는데... 그러다보니 생각보다는 피로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우등고속버스를 탈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덕에 점심값이 나왔으니 뭐 그것으로도 좋은 건가.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천을 따라 몇 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리모델링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고속버스터미널보다 훨씬 깨끗했다. 일단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육십령으로 가는 13시 20분발 서상행 버스표를 샀다. 전주에서 진안-장수-함양을 거쳐 대구로 가는 버스는 자주 편성되어있지만, 육십령 고개를 직접 넘어가는 버스편은 1시간 간격으로 뜸했다. 많은 지방 버스들이 그렇듯 버스는 선착순 자유석으로 예매는 의미가 없는 형식이다. 표 파는 아가씨는 버스 탈 때 기사님에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내린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하라고 한다. 점심시간을 빼내기 위해 일부러 표를 느긋하게 샀고, 남은 시간에 부근의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널찍한 스테인리스 쟁반에 한 상 가득 차려나오는 비빔밥. 늘 느끼는 거지만 역시 전주는 전주 비빔밥이다. (전주에 와서 비빔밥을 먹지 않은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때는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 그리고 편의점에서 산에서 먹을 식량 몇 가지를 보충해 배낭에 정리해 담고, 피씨방에 들어가서 간단히 미투데이와 블로그를 점검한 뒤 날씨를 확인하니 어느덧 버스시간이 되었다. 출발 전날에 비해 날씨가 조금 더 좋아지리라는 예보인지라 약간은 마음이 놓였지만, 예보는 어디까지나 ‘예보’일 뿐이니까.

진안-장계를 지나 함양으로 향하는 국도.

마치 말 귀와 같은 형상이라 그렇게 이름붙여진 진안 마이산(馬耳山).
정말이지 커다란 고구마 두 개를 세워 놓은 모습 그 자체였다!

외국인 자전거 여행자들. 이 친구가 바로 나와 이야기를 나눈 얀(Jan)이었다!
여기서만 해도 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육십령터널을 지나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위용. 인간이 만들어 낸 건축물도 가끔은 자연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단지 자연에 순응하기보다는 이용하고 극복하려는 존재. 바로 인간이다.

육십령 옛 고갯길. 지리산 정령치 고갯길에 비하면 그 임프레션이 많이 떨어져서 아쉬웠다.

대구가 종점인 서상행 전북고속 버스는 직행이 아니고 여기저기를 들러가는 버스였다. 중간중간 자주 정차를 해서 손님을 내리고 태웠다. 크고작은 화물만 받기도 했다. 역시 이쪽 산악도로 풍경도 산과 계곡의 위용이 제법 대단했다. 게다가 비록 회색빛이었지만 처음으로 내 눈으로 바라보는 진안 마이산은 정말이지 신기함 그 자체였다. 정말로 저렇게 기묘하게 생긴 산이 있다니! 진안에서 천천으로 가는 국도변에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한 무리의 자전거여행자들이 소나기를 맞으며 고개를 올라가고 있어 차창 밖으로 그들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틈틈이 소나기가 내리는 가운데 버스는 육십령에 도착했다. 미리 이야기했는데도 고갯마루에 정차하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는데 기사님이 내 폼과 배낭을 보고 그냥 파악했는지, 버스는 고갯마루의 새 휴게소가 아닌 함양 쪽으로 약간 내려온 옛 육십령휴게소 앞에 내려주고 휭하고 떠나 버렸다. 전라북도 장수군은 이제 끝이고, 여기서부터는 경상북도 함양군이다. 육십령휴게소에 들어가보니, 벌써 사람들의 말투가 달라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서깊은 옛 육십령휴게소.
보기에는 그저 허름한 국도변 휴게소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산꾼들에게 정말이지 전설적인 장소이다.

육십령 고개 표지석. 고갯마루의 높이는 해발 660m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과 경상북도 함양군 서상면을 연결한다.
많은 백두대간의 고개들처럼, 고개 양쪽으로 사투리가 달라진다!

고갯마루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
덕유산 쪽으로 두터운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때때로 굵은 빗방울을 뿌려 나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육십령에서 남덕유 서봉(할미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길 입구.
국립공원 입구와 달리 이곳은 소위 '꾼'들의 길이다.

겉으로는 다소 허름해보이는 육십령(六十嶺)휴게소는 예로부터 아주 유명한 명소로, 산에 관한 책을 좀 읽어봤다면 도대체 모를 수가 없는 장소이다. 여기를 경영하는 아주머니는 모든 산꾼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불린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고, 저렴하게 민박도 할 수 있다.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몹시 친절하시고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고 도와 주신다. 산을 내려온 산꾼들의 옷도 직접 세탁해주신다고 한다. 사진과 책으로만 보던 전설적인 장소를 실제로 보니 정말 놀라왔다. 나는 아주머니께 커다란 사과도 하나 얻었고 길 건너 새로 지은 깨끗한 숙소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가격은 2만 5천원으로, 여관보다 훨씬 저렴하고 시설도 무척 깨끗하고 편리해서 놀랐다. 큰 개가 세 마리 있었는데, 낯선 사람인 나를 보고도 큰 소리로 짖거나 하지 않고 모두 순했다. 한 마리가 최근에 새끼들을 여러 마리 낳았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어미 개를 불러 어린 강아지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무척 정겨웠다.
부슬비가 날리는 날씨라 윈드재킷을 갖춰 입고 육십령 고갯마루도 돌아보았다. 예로부터 백두대간을 넘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던 큰 고개인 육십령은 남한의 가장 큰 산들인 덕유산과 지리산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한 지점이었다. 그만큼 깊은 산중인 탓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서, 그리고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품이나 세공을 약탈해가는 도적떼가 많이 출몰해 육십명 이상이 모여야 안전하게 넘어간다 해서 육십령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갯마루의 유서깊은 휴게소도 그 옛날 그 시절 사람들이 쉬어가던 주막과 같은 개념이 아닐까? 지금도 국도와 고속도로가 이 고개를 지나는 것을 보면 역시 자연이 그어놓은 선의 의미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다. 그러나 그 오랜 내력에 비해 고갯마루 주변의 풍경은 자못 웅대하기까지 한 지리산 정령치나 설악산 미시령 등에 펼쳐지는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갯마루를 내려오면서 내일 올라가려고 마음먹은 할미봉 능선 방면의 백두대간 산길 입구도 미리 확인해 두었다. 입구는 좁았지만 표지판이 있었다.
숙소에서 잠시 쉬면서 창 밖으로 구름이 지나가는 산 풍경을 보았다. 챙겨온 간식도 조금 먹었다. 풍경은 멋졌지만...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는터라 역시 내일 날씨는 걱정이 되었다.

숙소의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다.

잠시 눈을 붙이고 길을 건너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TV에서는 무한도전 김연아 편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쩐지 나는 넋을 잃고 보게 되었다. 휴게소 안은 아까 자전거를 타고가던 외국인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정리하고 식사를 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비록 예전에 큰 부상을 당한 적은 있지만 그들처럼 자전거 앞 뒤로 주렁주렁 패니어를 달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지라 몹시 반가왔다. 한 명이 내 니콘 카메라를 가리키며 관심을 보였다.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저녁밥을 먹고 그들 중 뭔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이야기를 나눠보니 일기를 쓰는 중) 한 명에게 이야기를 붙여 보았다. Hello~ Where are you from?으로 시작해서...
나와 처음 이야기한 친구의 이름은 얀(Jan)으로, 그들은 체코에서 왔다고 한다. 유럽을 자전거로 두루 여행했다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에 처음 왔단다. 한국에 태권도장을 하는 한국인과 결혼해서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쪽 연으로 초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 밥을 먹으면서 귀동냥으로 어쩐지 동구권 사람들이지 않을까 했는데 나름 잘 맞추었다고나 할까. 커다란 키와 금발에 푸른 눈. 동유럽권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들은 여행 탓인지 나름 험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매우 점잖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그러나 뚜루루~ 뚜루루~ 하는 억양이 독특해서 알아듣기가 조금 어려웠고, 사실 내 영어란 것이 아주 거칠기 그지없기 때문에 손짓발짓에 필담을 섞어가며 간신히 대화를 했다. 나도 자전거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니, 그는 내게 그럼 당신의 자전거는 어디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자전거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근처 산에 등산을 왔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먼 외국에서 이렇게 자전거까지 타고 우리나라를 고생스레 여행하고 있는 그들이 매우 반갑고 고마워서... 우리나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악수를 청하며 웰컴 투 코리아를 해주었다. 그리고 “Sorry, my english is so rough.” 라고 하니 웃으며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담으로 나눌 때는 이야기가 아주 빠르게 잘 통해서, 종이는 마음껏 써도 좋다. 그리고 이렇게 보니 직접 말로 하는 것만 어려워할 뿐이지 글로써는 당신의 영어는 매우 훌륭하다! 라고 칭찬을 받았다. 아하하하하

그들은 오래 전에 서울을 출발했고, 여기 저기 문화 유적지들을 들러 경주까지 가는 일정이라고 한다. 합천 해인사와 경주 토함산, 석굴암과 같은 일정이 있었다. 정말 론리플래닛의 내용처럼 서양인들은 아시아의 사찰들과 고대 종교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나보다. 아니면 ‘론리플래닛 한국편’을 보고 여행 계획을 짰던가. 오늘은 날이 어두워졌고 비 때문에 여기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그들이 문을 두드려서 나가봤더니 인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잘 수 있느냐고 - 바디 랭귀지로 - 물어보길래 들어오라 하셨다고 한다. 비록 평소에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는 하지만, 외국어라고는 전혀 모르신다는데, 비 오는 깜깜한 밤에 이런 바이킹같은 거구의 외국인들을 여섯 명이나 안으로 들여보내시다니 정말이지 용감하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가 짧아 답답하기는 했지만 얀과 한참 동안 정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한번 이야기가 트이니 다른 일행들도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이 가져온 한국 도로지도에서 현재 위치와 정확한 지명 이름을 영어로 물어보길래 알려주었고, 들고 온 한글 현수막을 간단히 번역해주기도 했다. 현수막이 넘 많이 잘려나가서 힘이 들었지만... 그리고 휴게소 아주머니를 비롯한 우리 나라 사람들과의 이야기 통역까지 해 주었다;; 휴게소 아저씨는 그들이 비싼 자전거를 혹시나 도둑맞으면 안되기 때문에 휴게소 안에다 한데 묶어 보관해두는게 좋겠다고 전해달라 해서 그렇게 했다. 이 대목을 영어로 이야기해주기가 참 힘들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한국에는 자전거 도둑이 많아서, 당신들의 자전거를 한 군데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게 좋겠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이 부근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가게 주인 되시는 분은 당신들의 자전거가 비싸보인다며, 혹시나 해서 좀더 안전하게 간수하는것이 좋겠다고 권하신다.”

그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 곧 내 말의 본 뜻을 알아듣고 잠시 논의를 한 뒤 말끔하게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와 보관했다. 그리고 얀이 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이제 안전한가?”
“정말 그렇다(Absolutly Sure).”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 쓰게 되는 ‘absolutly’ 나 ‘perfectly’ 의 표현은, 정말이지 뭔가 말끔하게 끝맺는 느낌이 너무 좋다!

얀은 술을 마실 때 영어의 Cheers! 에 해당하는 한국어 표현을 소리나는 대로 영어로 써달라고 하기에 ‘건배(Gun-Bae)’와 ‘위하여(We-Ha-yei)’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들은 ‘건배’가 더 쉽다고 건배를 쓰겠다고 한다. (자신이 더 읽기 쉬운 알파벳 발음으로 고쳐 적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아침 식사를 할 때 물잔을 들면서 ‘건배’ 라고 하는걸 보고 살짝 감동받았다. )
그들은 27일경 서울에 다시 올라와 휴식 후 곧 체코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서울에서 마지막 맥주 파티를 할 생각인데 나를 꼭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고, 얀도 서울의 친구 Tereza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그들이 한국에 온 기념으로 단체 기념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7시 반쯤엔 출발할 예정이니 7시쯤 이곳으로 오면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Good Night!”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올해 초 겨울에 덕유산을 올랐다던 등산 학교 친구와 전화로 길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숙소의 밤은 편하고 아늑했으나, 가끔 창문에 부딪히는 비바람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곤 했다.





둘째날 : 2007년 9월 23일 일요일 - 육십령-영각사-남덕유산-삿갓골재대피소

휴대폰 알람 소리에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주변에는 옅은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날씨는 예상 이상으로 더욱 나빠져 있었고, 산에 걸린 구름을 보니 1천 미터 이상 고도를 올리면 불과 20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듯한 상황이어서... 덕유산의 멋진 조망을 기대했던 나는 매우 낙담했다. 사실 이런 날씨라면 등정 때 비가 마구 쏟아지지만 않아도 다행인 날씨였다. 전날 밤에 그랬듯이 지도를 보고 한참 고민한 뒤, 소요시간이 많이 걸리고 위험도 예상되는 할미봉-서봉을 거쳐 남덕유로 오르는 긴 백두대간 암릉 루트는 포기하고 조금 우회해서 영각사 쪽에서 국립공원 탐방로로 바로 남덕유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약 3시간 정도 단축할 수 있는 길이다. 아무튼 나는 아직 왼쪽 팔을 무리하게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동료들이 패니어를 자전거에 부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얀.

출발 전 모두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Ready? Everybody smile~ 마치 내가 외국으로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었다.

7시쯤 아침식사를 하러 휴게소로 가 보니 주인 아주머니가 “비 오는데 그래도 갈끼가?” 라고 물어보셨다. 체코인 일행은 이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과 가볍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Good morning!” 아침 식사를 하고 문가에서 바깥바람을 쐬고 있는데 얀이 나와 웃으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 천천히 그들이 준비하는 것을 구경했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사진 찍고 싶으면 굳이 물어보지 말고 언제든 찍으라고 한다. 그들은 어제와 같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오늘과 내일 날씨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한국 기상청에서는 오늘 오전까지만 비가 온다고 했는데, ‘어디까지나 그들 생각(Just their own thinking)’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라고 이야기해주었더니 모두 웃었다. 아마도 틀린 일기예보는 어느 나라에서나 시니컬한 농담거리가 되나 보다. 붉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동료들이 비를 맞으며 자전거에 패니어(자전거용 짐가방)를 다는 작업을 지켜보던 얀은 웃으면서 내게 ‘정말 좋은 날씨다! (It is good weather!)’ 라고 탄식했다. 내 제의로 출발 전 모두들 일렬로 서서 포즈를 취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뽀르또~ 뽀르또~ (photo?) 하면서. “Ready? Everybody smile~” 한 장 찍고, “Wait, Just one more shot~” 늘 하듯 한 장 더 찍었다. 찍기 전에 체코 국기가 바람에 좀 접혀버려져서 내가 펴 주었다. 사진은 이메일로 보내 준다고 (I’ll send you this photo via e-mail) 했더니 모두들 이메일, 이메일~ 하며 몹시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나보다 앞서 출발했다. 얀은 나에게 손을 흔들며 “Good luck, bye” 했고, 나는 “You too, Have a nice and safe trip!, bye” 라고 해 주었다. (Safe 라고 굳이 붙인 이유는 나쁜 날씨도 있지만 아직도 회복이 덜 된 내 왼팔을 의식해서였다. 물론, 왼팔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그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냐하하하하 )

그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육십령을 넘어온 서상행 버스 한 대가 잠시 멈칫거리다가 지나갔는데, 휴게소 주인 아주머니는 서상으로 가는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뒤인 9시 20분에 있다고 하신다. 손을 들어야 세워준다고.평소 여기에서 타는 사람은 아무래도 거의 없을 듯하니까.
짐을 챙겨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며 바깥을 거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말없이 잠시 내다보셨다. 나중에 출발 전 인사드리러 들어가보니 장을 보러 나가셨다고 한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해 정말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찾아오면 되겠지.
버스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는데, 서상 쪽에서 택시가 한 대 올라오더니 유턴을 해서 휴게소 앞에 선다. 기사님이 창문을 열고 물어보셨다. “혹시 차 부른 것 있어요?” “아뇨, 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그랬더니 어디 가냐고 해서 영각사 쪽으로 덕유산에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어차피 거기 가려면 서상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 타야하는데 버스값+택시비 해서 10,000원이 나오니 2,000원 더 보태서 12,000원으로 여기에서 직접 영각사 입구까지 이 택시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신다. 택시비를 내려면 서상 가서 돈을 찾아야 한다고 했더니 서상 농협 현금 인출기 앞에서 조금 기다려 주신단다. 시간도 아끼고 편한지라 지체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기사님이 배낭을 트렁크에 시원스레 실어주신다.
택시를 타고 육십령을 내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상을 들러 영각사 쪽으로 올라가는데 이때도 즐거웠다. 주변에는 큰 산 아래답게 사과 등 과실나무밭이 많이 있었다. 기사님도 이 지역은 산(덕유산)이 있어 살기 너무 좋다고 하셨다. 내가 요청하자 개인택시 명함과 주변지역 버스 시간표를 주셨다. (하나 둘 쌓여가는 지역 개인택시 명함도 일종의 여행의 상징들 중 하나이다.)그리고 다음부터는 전주를 거쳐서 멀리 돌아오지 말고 중부고속도로로 오는 안의행 버스를 타면 이곳까지 훨씬 싸고 빠르게 올 수 있다 하셨다. 안의는 안의갈비찜으로 익히 유명한 바로 그 동네이다.

익숙한 스타일의 검은 나무 빛깔에 흰 판넬이 부착된 국립공원 안내판을 지나 한참을 올라간 뒤 영각사 입구에서 택시가 멈추었다.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9시 45분에 드디어 입산! 덕유산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간간이 소나기로 변하던 부슬비에 상하의에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로 중무장했지만 이때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고 구름과 안개 정도였다. 체온조절을 위해 중간에 옷을 가볍게 갈아입고 올라갔다. 비는 어느 사이 그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계곡에는 수량이 매우 풍부해서 콰~~ 하는 물소리가 울렸다.
중간에 간단히 단팥빵을 하나 먹었고 숲을 뚫고 능선에 올라서서 남덕유로 직접 오르는 길, 중간에 나를 앞질러 간 분이 두 분 있었다. (알고보니 서로 아는 분이었다.) 먼젓분은 나에게 이런 날 혼자 온걸 보니 사진 찍으러 왔군요 라고 하셨다. 어떻게 아시냐고 여쭤봤더니 이런 날 혼자 산 오르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거의 대개라고 하신다. 예전의 한 산악사진집 제목처럼, 역시나 산악사진가에게는 무조건 ‘우중입산(雨中入山)’인 것인가. 고생스러워도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런 것 아니냐고. 그리고 이따 앞에서 보자고 하신다.

주변에 가득한 짙은 운무로 숲 속은 마치 꿈 속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며 말로만 듣던, 그리고 책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남덕유의 험한 산세에 몹시 놀랐다. 위압적인 바위 봉우리를 따라 마치 하늘로 오르는 듯한 급경사 철계단이 계속 나타났다. 사방이 온통 두터운 구름 속이라 주변은 물론 철사다리의 끝마저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어쩐지 더 아찔했다. 정말이지 사람은 보이지 않는 대상에 더욱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짙은 운무에 바로 눈앞에 있는 날카로운 암봉들이 약하게 실루엣만 보여 더욱 위압적이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어져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끈을 조이고 빗물에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철계단 난간을 단단히 잡고 올라가니 몹시 손이 시려웠다. 등산 스틱에서 스노우 링을 제거해 걸리적거리지 않게 한 뒤 손목에 스틱을 걸고 올라간다. 스틱이 계단에 걸려 덜걱덜걱하는 소리가 울린다. 아무튼 훨씬 가뿐하다. 남덕유에 거의 다 올라간 중간에서 앞서 간 두 분을 만났다. 두 분은 원래 산 친구분으로 이곳에서 오늘 만나기로 하고 올라왔다 하신다. 나를 기다리다가 - 내가 너무 늦는 바람에 - 나를 위해 남겨둔 막걸리를 모두 마셔버렸다고 하신다. ^^;; 놀랍게도 쌈장과 야채, 그리고 쇠고기를 준비해서 간단히 구워 드시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미 구운 고기를 포함해 남은 고기를 모두 구워서 주셨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아악~ 너무나 맛있었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육십령휴게소 주인 아주머니가 주신 귀퉁이가 약간 썩은 큰 사과를 꺼냈다. (나는 산에 갈 때 간식으로 과일을 거의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현지에서 가끔씩 얻는데, 정말 소중한 보조 식량이 된다. 과일은 나에게 알맞은 양으로 소량 구입하기는 힘든 반면 수분이 많고 피로 회복에 좋은 영양분도 많기 때문이다.) 귀퉁이가 약간 썩었지만 사과가 있어요~ 라고 했더니 두 분은 한 목소리로 “사실 썩은 사과가 더 맛있제!”고 하신다. 그러나 나에게 갈 길이 먼데 식량은 아껴야한다고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시는 것을 내가 끝까지 우겨서 드시게 했다. 나는 칼을 꺼내 사과를 깎았는데, 내가 서투르게 깎는 폼이 너무 불안하시다며 손수 가져다 시원스레 깎아주셨다. 역시나 나라는 인간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어설픔’이다. 냐하하하~ 사과는 역시 최고의 후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두 분의 기념 촬영도 해 드렸다. 역시 두 분 다 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다. 어디를 여행해도 똑같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격을 물어본다. 물론 그에 대한 나의 대답도 늘 같다. ^^;; 아하하하~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카메라를 넘겨드렸다. 세로사진을 부탁했더니 능숙하게 배터리그립의 세로 셔터로 바꿔 잡으시는 분들이었다. 찍는 느낌이 좋다고 하셔서 SLR 카메라의 ‘손맛’ 이야기를 하니 모두들 웃었다. 이제 일행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다시 남덕유로 향했다.
13시 50분 오늘의 가장 주요한 목표 지점인 해발 1,507m 남덕유산 정상 도착. 주변은 역시 짙은 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뭣이던지 한 번에 다 볼라믄 안되제~’” 정겨운 전라도 말투. 덕유산은 부드러운 북덕유보다는 역시 박력있는 암릉길이 일품인 남덕유/장수덕유(서봉)산이 최고라고 하신다. 암튼 이제 그 분들과 헤어져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휴식처인 삿갓골재대피소로, 그 분들은 서봉 쪽으로 하산하시는 것이다.

남덕유산에서 드디어 백두대간 능선길로 향하다.
원래는 이곳에서 최종 목표인 향적봉을 바라볼 생각이었는데...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월성치-삿갓봉 구간은 상당히 지루하고 힘이 들었다. 삿갓봉이라고 해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해발 1400미터를 가볍게 넘는,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보다 높은 봉우리인 것이다. 길은 몹시 상태가 나빴고 잡목도 많았다. 어차피 두터운 구름으로 조망도 없는데다 몹시 지쳐서 삿갓봉 정상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삿갓골재대피소로 길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가면, 물과 따뜻한 음식, 그리고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GPS의 배터리가 떨어졌는데, 대피소가 지척이고 해서 예비로 교환하지 않고 그냥 가기로 한다. 1년을 넘게 사용한 등산 스틱 1개의 마지막 단이 약간 휘어졌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버틸 만한 수준이다. 서울에 돌아가서 부품을 교체받으면 되겠지. 가끔 바위에 앉아 쉬면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는다. 그러다 보니 드디어 저 아래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17시 30분경 안개 자욱한 짙은 숲 사이로 건물 지붕이 보인다. 오늘의 베이스캠프 삿갓재대피소 도착. 감격의 순간이었다.

덕유산 국립공원 삿갓골재대피소.
나의 첫 번째 베이스 캠프.

대피소에서 담당 직원에게 예약을 확인했는데, 간단히 구두로 확인했고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았다. 우선 바깥에서 개인 정비를 하고 들어오라고 해서 빗물통에서 완전히 진흙투성이인 오버트라우저 바짓가랑이와 등산화, 그리고 등산 스틱 끝을 세척했다. 스틱 끝에는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안전 보호캡도 씌웠다. 내 침상 번호를 받고, 짐을 풀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취사장에서 밥을 해먹는다. 정말 마음이 편안해졌다. 추석 전이라 그런지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는 준비해 간 제트보일 버너를 꺼내 반개짜리 햇반과 컵라면, 그리고 3분 햄버그스테이크를 천천히 조리해서 먹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헤이즐넛 커피믹스를 마시니 기분이 최고가 되었다. 음식을 몸에서 빨아들이는 기분.
짐을 정리하고 담요를 2장 빌려 침상을 만든 뒤, 보온용 파일재킷을 꺼내 입고 구름이 흐르는 바깥에서 바람을 쐬었다. 이미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진 상태였지만, 아직도 내 주변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여유로운 기분. 헤드랜턴으로 장난을 친다. 할로겐 램프의 광선이 마치 깔대기처럼 구름 속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휴대폰을 켜서 지인들에게 간단히 도착 보고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파일재킷을 벗어 예비 잡주머니에 넣고 베게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덕유산 기념엽서도 2장 받아왔다. 오늘의 기록을 마무리하고 엽서를 쓴다. 그리고 얀 일행을 떠올렸다. 그들은 예정한 목적지에 잘 도착했을까. 이 밤 어디에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 해발 1천 미터 위에서의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셋째날 : 2007년 9월 24일 월요일 (마지막날) - 삿갓골재대피소-향적봉-무주-대전-서울

드디어 여정도 마지막 날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덕유산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놓고 자는데... (엽서를 쓰면 알아서 부쳐준다. 우표값은 자율함에 넣으면 된다.) 옆 코골이 아저씨 때문에 완전 고생했다. 이어폰을 꽂고, 귀를 막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그러나 어떻게 해도 그 굉장한 소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산장 건물 자체가 드르르하고 진동하는 듯했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는지 주변 사람들도 다 뒤척뒤척했다. 나는 그렇게 잠귀가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침구를 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옆 아저씨 한 분이 그런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시계에는 불이 안 들어온다며 시간을 물어보았다. 11시 56분인데요~ 했더니 아이구~ 아직도 한참 남았네 탄식하시며 담요를 뒤집어썼다. 나는 바깥에 나와서 편히 자고 있었는데, 자다 일어나 보니 내 주변의 아저씨들은 전부 나처럼 나와서 자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이런 곳은 아침 알람이 거의 불필요하다. 제일 먼저 바깥 날씨를 확인했다. 깜깜한 바깥은 바람이 제법 불고 어제보다도 비가 많이 내렸다.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아져 있기를 바랬는데... 다소 낙담한 기분으로 취사장에서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식사를 조리해서 먹었다. 날씨를 걱정하며 출발을 미루는 이들도 있었고, 아직 깜깜한데 벌써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트보일 버너의 점화기는 지난 겨울의 계방산에서처럼 또 둘째날 작동을 안해서 (약간의 습기에도 예민한가보다) 가져간 비상용 라이터로 점화해 사용했다. 식사를 하고 올라와보니 코골이 아저씨 태연하게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말 기가 찼다.

매우 희미하지만 순간 그 형체를 드러낸 덕유산 주릉의 연봉들.
차례로 동엽령-백암봉-중봉-향적봉이다.

덕유산 주릉을 타고넘는 거대한 구름 띠. 지난 번 포스트에 올렸던 사진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은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허락되었다.


궂은 비에 대비해 상하의에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로 중무장하고 가용한 장비로 최대한 완벽하게 방수대비를 한 뒤 바깥이 헤드랜턴도 필요없어질 만큼 제법 밝아진 6시 45분 산장을 출발해 무룡산으로 향했다. 산장 관리인 아저씨가 내 폼을 보고 옷은 든든히 입긴 했는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해서 향적봉에 간다고 했다. 아무튼 일단 출발하면 중봉 아래쪽의 백암봉 송계삼거리까지 최소 4-5시간 길은 나에게 해당되는 탈출로가 없기때문에 죽어라고 가야하는 길, 이번 여정에서 가장 지루하고 힘든 길이 될 예정이었다.
비는 갈수록 많이 내렸고 좁은 등산로는 모두 물이 줄줄 흐르는 계곡이 되었다. 등산 스틱으로 키 높이를 넘는 잡목들을 헤쳐가며 가느다란 길을 따라 계속 전진, 바닥은 진흙이 깊어 푹푹 빠지기 일쑤였다. 의심스러운 곳은 일일이 웅덩이에 스틱을 꽂아 보며 빠지는 깊이를 확인해가며 나가야 했다. 가끔 개방된 곳에서는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통에 꼴은 점점 처량해져갔다. 수시로 GPS를 꺼내서 현재 내 위치와 다음 웨이포인트까지의 남은 거리, 그리고 앞 길의 경사도를 파악하며 전진했다. 악천후에 고립무원의 산속에 홀로 있는 와중에서, 언제나 그렇듯 실시간으로 여정을 모니터해주고 정확한 무빙맵도 표시해주는 GPS 장비는 나에게 굉장히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한마디로 맵핵을 쓴 스타크래프트하고 비슷한 것이다. 또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제 무척 느낌이 달라져서 내가 먼저 인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농담도 하게 되었다.
비에 완전히 젖어서 무룡산을 지나고 동엽령에 다가가면서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면서 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운해가 나타나고 향적봉-중봉을 타고 넘는 거대한 구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시 짙은 구름이 들어차 그런 풍경들은 아주아주 잠깐씩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난 햇빛은 너무나 반가왔다. 구름은 산 아래로 마치 바다처럼 낮게 깔렸다.
1996년 설악산 대청봉 이후로 높은 산에서는 정말 10년만에 보는 운해였다.

구름은 쉴 새 없이 골짜기를 타고 오르며 주변을 다시 회색빛으로 채웠다.
마치 나에게 계속 갈 길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둥엽령의 운해. 이곳에는 널찍한 전망대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주변 시야는 곧 회색으로 채워지고 굵은 빗방울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다시금 구름에게서 도망쳐 그리운 햇빛을 만나다.
그러나 하루종일 그랬던 것처럼 덕유산의 날씨는 결코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동엽령에 거의 다가간 부근에서는 비가 완전히 그치고 햇빛이 나기도 했다. 흰 뭉게구름들 사이로 지독하게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녹색 바탕에 조금씩 가을 물이 들어가고 있는 능선과 바위들은 답답했던 회색의 커튼을 벗어버리고 원래의 색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정말 이틀간 비를 맞다가 푸른 하늘을 보니 하늘에 꺄악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운행시간이 좀 아깝기는 했지만 널찍한 바위 위에서 한참 동안 풍경을 감상했다. (이런 곳에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널찍한 바위가 있곤 하다.) 그 사이 점심용으로 준비해둔 행동식량으로 간단히 요기도 하고... 비에 젖은 윈드재킷과 모자, 장비들도 널찍한 바위에 널어 말렸다. 카메라 필터도 모두 분해해 습기도 깨끗하게 제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튼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이 젖어 있었으니까. 나와 지금까지 여정을 함께 했던 어느 존재에게나 휴식이 필요했다. 여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600g 짜리 광각렌즈도 드디어 빛을 보았다. '고생해 가져온 보람이 있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일 터이다.
지나가는 분이 한 분 있었는데 햇빛이 난다며 매우 기쁜 표정이었다. 잠시 햇빛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나봐요.”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분은 “명답이네요!” 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라졌다. 산에 오르면 다들 신선같은 소리만 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구름은 금새 차올라 주변은 다시 짙은 회색빛이 되었다. 이제 그만 쉬고 계속 가라는 뜻일게다. 아무튼 입고 있는 오버트라우저 하의를 빼고 모든 방수 장비를 거둬들이고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전진해서 동엽령에 도착했다. 잠시 멈춰 서서 쉬고 계신 아저씨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골이 아저씨 이야기를 했더니 산장에 가끔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다고 박장대소하셨다. 삿갓재대피소 매점에 구비된 식량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가진 반개짜리 햇반을 나누어 드렸다. 오는 길에 다른 분들께 사과와 고기까지 얻어 먹었으니 이 정도는 나누어드려야지~

굵은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 나는 다시 방수 장비를 모두 꺼내 착용했다. 배낭은 가벼워지지만 그 대신 몸은 답답해지고 쉬이 피로해진다. 악전고투 끝에 백암봉, 송계삼거리에 도착. 중간중간 구름이 덕유산을 타고넘는 장대한 풍경들을 조금씩 볼 수 있었지만 역시 금방금방 두터운 구름에 덮여 사라져버렸다. 덕유산이 이렇게도 수줍음이 많은 산이었던가? 송계사 삼거리쯤에서는 정말 지쳐서 한참을 쉬었다. 여기는 백두대간이 덕유산 주릉과 분리되어 신풍령(빼재)쪽으로 흘러가는 지점이다. 그리고 계속 북상해서 예전에 이 덕유산을 처음 바라보았던 영동 민주지산의 삼도봉으로 이어진다. 아무튼 만 하루가 넘게 같이 하던 백두대간과 이제 헤어지는 것이다.

향적봉대피소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
'난 지금 하늘이 보고 싶다'라는 어떤 영화 속 대사가 깊이 내 가슴을 울렸다.

최종 목표인 향적봉 도착!

이 지역 최고의 전망대라는 향적봉 주변도 역시 두터운 구름 투성이.

나와 함께 고난을 뚫고 임무를 완수한 나의 귀중한 배낭, 그리고 생존 장비들.
파손된 등산 스틱의 끝부분은 길이를 줄일 수가 없어 분리해 따로 보관했다.
그리고... 이렇게 등산 스틱에 보호 캡을 씌우는 일은 나에게 여행의 뚜껑을 닫는 작은 의식과도 같다.

중봉을 오르면서 넉넉한 덕유평전이 시작되었다. 널따란 초원에 나무로 만들어진 등산로, 아고산대 기후라는 지리산 노고단, 그리고 소백산의 주릉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길도 힘은 많이 든다. 왜냐면.. 보통 이런 길은 마치 평지인 양 은근한 듯 하면서도 사정없이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1,570미터 중봉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나는 완전 지쳐버렸다. 겨우 중봉에 오르고.. 향적봉으로 향하면서 주변의 경치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계에 나타나는 고도계 눈금을 보며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내딛는 일이 전부였다. 결국 최종 목표인 향적봉 바로 아래에 도착. 여기에는 삿갓골산장보다는 다소 규모가 작은 향적봉산장이 있다. 바로 계단만 오르면 긴 여정의 끝인 향적봉이건만 몸이 후들거려서 더이상 갈 수가 없었다. 한기까지 드는지라 일단 파일재킷을 꺼내 입은 뒤 남은 식량을 모조리 끓여먹고 몇 달 전부터 배낭 속 비상식량으로 다 뭉개진 초코파이도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닥닥 긁어 먹었다. 그 덕에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식량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 ‘최후의 일전’을 위한 마지막 재충전이라고나 할까. ^^;; 이번에도 역시 음식이 온 몸으로 빨아들여지는 느낌, 잠깐 햇빛도 나서 옷과 장비도 최대한 말리고 등산화도 깨끗하게 닦았다. 빗길과 진창길을 무사히 돌파하는데 막대한 도움을 주었던 오버트라우저 하의는 어제보다 훨씬 심하게 더러워져있어서 세탁 포기, 그냥 잘 개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옷도 그나마 가장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니 모든 것이 아주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로 이제 몸에 다시금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역시 등산 교재에 써 있는대로, 목표가 코앞이라고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휴식이 꼭 필요하다 느끼면 바로 쉬어야 한다. 아무튼 마지막 계단으로 향적봉에 올랐다. 향적봉은 금방이었다.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대기 바위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 기분은 몹시 행복했다. 여기는 아무튼 해발 1,614m 인 것이다. 리조트 쪽에서 카메라 장비를 지고 올라온 분도 여럿 있었다. 기온이 떨어져서 구름이 낮게 깔려주기를 기대해보신다나... 아무튼 거짓말 같지만 이것으로 여행의 메인 무대가 무사히 끝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여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긴 악천후를 뚫고 기어이 24킬로미터의 종주 산행을 해냈다는 뿌듯함도 컸다. 가져온 물품들 중 사용하지 않은 것은 폴리에틸렌 물백과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용 건전지들 뿐이었다. 짐 세팅도 완벽하게 성공. (다음 번에는 짐을 더욱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에는 쉬는 무주리조트 스키장 리프트.
아련한 구름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껴졌다.

구름 아래쪽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았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은 산과 골짜기를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이틀간의 빗속 산행에 너무나 지쳐버린 관계로 무주구천동 계곡 하산을 포기, 그나마도 마지막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화장실에 들르고 그간 산에서 발생한 모든 쓰레기들을 담은 봉지를 재활용 수거함에 탁탁 나누어 버렸다. 이렇듯 하산해 쓰레기를 버리는 과정은 일종의 작별 행사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물어물어 약간 처량한 포즈로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무주리조트 셔틀버스를 타고 무주터미널로 향했다. 오래 버스를 기다린 건 힘들었지만 리조트 버스라 무척 친절한데다 요금이 무료였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새 경상도 사투리는 모두 사라지고 다시 전라도 억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사이 사람들에게 휴대폰으로 도착 보고를 했다. 곤돌라가 너무 빨리 내려와 한참 동안 가벼운 멀미가 났었는데, 아무튼 산 아래 날씨는 거짓말처럼 좋았다. 셔틀버스는 설천과 나제통문 쪽으로 크게 돌아 무주로 향했는데, 어둠 속에 보이는 계곡 풍경도 좋았다. 이곳은 과거 삼국시대 신라-백제의 접경 지대였던 것이다.
무주터미널-서울남부 직통버스는 17시 45분이 막차다. 예정대로 대전행 직통 전북고속 버스를 탔는데, 버스기사님 뒷자리에 앉은 덕에 오씨 성의 기사님의 입담이 너무 재미있어서 대전까지의 한 시간 길이 정말로 즐거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못견디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경우에 살짝 맞장구를 쳐드리면 대부분 아주 유쾌한 상황이 된다. 아무튼 좀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그러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기사마다 성질이 달라서 쎄게 달려불면 빠르게 가는 기사도 있고... 운운해서 시골에 가면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조리 땅을 줏어먹으며(구부정하게) 다닌다는 둥, 오사마 빈 라덴 등등 오씨 성 가진 사람은 무서워서 자기는 오자 들어간 음식은 안먹고 심지어 냉면에서 오이는 걸러내라고 부인되시는 분께 이야기한다는둥... 인제에서 군대생활 할 때 바둑판조 더덕조 했던 이야기들 등등... 특히 더덕을 캐다가 작은 까치독사를 보고 이걸 지휘관님께 가져다드리면 좋아하겠다 해서 각고의 노력끝에 잡아갔는데 선임하사가 캐오라던 더덕은 안 캐오고 뱀은 또 왜 잡아왔느냐며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20바퀴 뺑뺑이를 돌렸다고 한다. 근데 이 대목에서 내가 “그럼 그 뱀은 어떻게 됐어요?” 라고 여쭤봤더니 “그건 모르제~ 선임하사가 구워먹었는제 삶아먹었는제~!” 이 순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모든 승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완전최고! 이렇게 구수하고 유쾌한 시외버스는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다. 예정보다 10분이나 빠르게 도착했는데, 자기가 앞서 말했듯이 성격이 급해서 그렇다고 한다. 아하하~ 여행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도없이 계속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분만은 산 속에서와 달리 분명히 속세로 돌아온 따스한 느낌이었다. 산 속에서는 내 자신을 통해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지만, 이곳 속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나 할까.

대전역 플랫폼.

반대편 플랫폼에 도착한 동대구행 KTX 고속열차.
에어브레이크 소리가 몹시도 인상적인 KTX는 나에게는 늘 '은하철도 999'와도 같은 존재였다.

은하철도에 탑승해 미끄러지듯 출발. 이제 시속 300km 로 집으로 달려간다.
고속열차는 화끈하게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지극히 걸맞는 이벤트라고 생각되었다. 비싼 표 값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전 터미널로 나를 마중나와 준 오랜 대전 친구를 만나 하산주 겸으로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했다. (사이버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잠깐 공부했을때 알게 된 벗으로, 예전 계룡산 종주에서 니콘 F90 필름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 준 친구이기도 하다.) 출발 때의 감기 기운이 아직도 있어 간단히 약도 사서 먹었다. 역시 전라도 말투는 어느 새 사라져 있었다. 아하하하~ 그리고 고속버스를 탈까 하다가 고속열차도 한번 타보고 싶어 대전역에서 난생 처음 KTX를 탔다. 10시 9분에 출발하는 고속열차는 표값은 심야고속버스보다 몇 천원 더 비쌌지만, 대전 시내를 벗어나면서 이내 우르릉하는 소리를 내면서 속력을 올리는데 GPS를 꺼내들고 속력을 측정해보니 정말로 최고시속 300km로 달렸다. 시간도 정확했다. 전용 고속선을 달릴 때 만큼은 꼬짓부렁따윈 없었던 것이다! 광명에서 한 번 쉬고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딱 1시간 걸렸다. 이거야 뭐... 거짓말 같았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고고싱. 예정대로 날이 바뀌기 전 추석 전날 밤에 무사히 집 도착. 23시 35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까지 실로 화끈하기 그지없었다! 대전에서 고속버스를 탔다면 아직 서울에도 도착 못했을 시간인데 말이다.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짐을 풀어서 소중한 장비들을 베란다에 모두 꺼내 말렸다. 메모리 카드를 빼내 사진을 컴퓨터로 업로드한 후 무겁게 내리누르는 바윗돌과도 같은 잠에 바로 뻗어버렸다. 얀 일행은 어디까지 가고 있을까, 잘 가고 있을까. 그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역시나... 다녀온 일은 꿈만 같다. 이제 모든 것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겠지.


by 티티 | 2008/02/03 03:05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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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윌리 at 2008/02/06 05:45
60령고개, 제가 바이크로 처가 내려갈때 (경남 함양군 안의면) 덕유산에서 넘는 그 고개군요 ㅎㅎ
차분히 자연을 즐기고 낯선이들을 만나 배우는 것, 여행의 참맛을 너무 잘 느끼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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