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의 산수화가 안중식(1861~1919)의 대표작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광화문 앞 해태상, 광화문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전각 지붕들, 그 뒤로 웅장한 백악산(현 북악산)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경복궁의 옛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지만, 아쉽게도 이 역시 조일전쟁(임진왜란)이후 다시 중창된 경복궁이다. ![]() 광화문 중수공사가 시작되기 전, 세종로 거리에서 직접 촬영한 경복궁의 모습. 아지랑이 속에 지붕들이 아련하게 떠 있다. 차례대로 광화문, 흥례문, 근정전이다. 흰 빛으로 양성된 지붕마루의 선이 중첩된 모습이 매우 위엄있다. 광화문. 흥례문의 우진각 지붕 뒤로 그 크기부터 매우 비교되는 근정전의 우람한 팔작지붕이 보인다. (비록 뾰족한 끝 부분만 보이지만 그 뒤로 더 크게 솟아오른 지붕은 분명 경회루의 지붕일 것이다.) ** 이 그림을 보다보니 한옥의 기와지붕은 정말로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처럼 보인다. **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 중심 궁궐)으로 태조 이성계 때 창건되었던 첫 번째 경복궁은 그 뒤로 크고작은 화재를 겪었으나, 우리가 알다시피 임진년 왜란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몽진길을 떠나는 임금님을 증오한 백성들이 - 왜군이 도성에 침입하기도 전에 -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 당시 경복궁 뿐만 아니라 종묘, 창덕궁, 창경궁 등 다른 궁궐들도 소실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전쟁에 대비치 못하고 무력하게 국가를 버리고 살 길만 찾아 떠난 왕가와 지배계층을 비난했으며, 또한 아무리 분하다고 해도 국가의 상징에 불을 질러버렸던 '무지몽매한' 백성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비난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실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중 '선조수정실록') ![]() 선수 26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4월 14일(계묘) 28번째기사 자료 : 조선왕조실록 디지털 검색 서비스 (http://sillok.history.go.kr) 도성의 궁성에 불이 나다 (都城宮省火) 도성의 궁성(宮省)701) 에 불이 났다. 거가가 떠나려 할 즈음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內帑庫)에 들어가 보물(寶物)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亂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掌隷院)과 형조(刑曹)를 불태웠으니 이는 두 곳의 관서에 공사 노비(公私奴婢)의 문적(文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인하여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경복궁(景福宮)·창덕궁(昌德宮)·창경궁(昌慶宮)의 세 궁궐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는데, 창경궁은 바로 순회 세자빈(順懷世子嬪)의 찬궁(欑宮)702) 이 있는 곳이었다. 역대의 보완(寶玩)과 문무루(文武樓)·홍문관에 간직해 둔 서적(書籍), 춘추관의 각조 실록(各朝實錄), 다른 창고에 보관된 전조(前朝)의 사초(史草),【《고려사(高麗史)》를 수찬할 때의 초고(草稿)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모두 남김없이 타버렸고 내외 창고와 각 관서에 보관된 것도 모두 도둑을 맞아 먼저 불탔다. 임해군의 집과 병조 판서 홍여순(洪汝諄)의 집도 불에 탔는데, 이 두 집은 평상시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유도 대장(留都大將)이 몇 사람을 참(斬)하여 군중을 경계시켰으나 난민(亂民)이 떼로 일어나서 금지할 수가 없었다. 都城宮省火。 車駕將出, 都中有姦民, 先入內帑庫, 爭取寶物者。 已而駕出, 亂民大起, 先焚掌隷院、刑曹, 以二局公、私奴婢文籍所在也。 遂大掠宮省、倉庫, 仍放火滅迹。 景福、昌德、昌慶三宮, 一時俱燼。 昌慶宮卽順懷世子嬪欑宮所在也。 歷代寶玩及文武樓、弘文館所藏書籍、春秋館各朝《實錄》、他庫所藏前朝史草、【修《高麗史》時所草。】《承政院日記》, 皆燒盡無遺。 內外倉庫、各署所藏, 竝被盜先焚。 臨海君家、兵曹判書洪汝諄家亦被焚, 以二家常時號多畜財故也。 留都大將斬數人以警衆, 亂民屯聚, 不能禁。 이렇게 선조 임금님이 몽진길을 떠난 후 불과 2~3일 안에 우리의 아름다운 궁궐들이 안타깝게 소실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뿐만 아니라 전쟁 중의 재상이었던 서애 유성룡의 '서애집'등에도 유사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적 객관성에 대해서는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고, 유성룡의 인품과 그가 펼친 정도(政道)에서 볼 때 이런 기록들이 일부러 의도를 품고 현실을 왜곡시켰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말 예의를 중시하던 우리 나라 백성들이 궁궐에 불을 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 아무리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이 정말 옳다면 이보다 며칠 후인 5월 3일 왜군이 한성을 점령했던 날에는 서울의 모든 궁궐들이 불타버려 재만 남은 상태였어야 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적군이었던 일본 측의 기록에는 이와는 다른 내용들이 있어 관심이 가져진다. 왜군의 선봉대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부대의 장수 오오제키(大關)의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기록에는 아래와 같이 적는다. "술시(戌時), 조선의 도읍 동대문으로 진입하여 황성(皇城)을 바라보니, 옥루금전(玉樓金殿) 늘어선 기와집과 넓은 성벽들이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고 수천만 처마와 대문들의 귀한 모습은 이루 형용할 길이 없다." "궁전(경복궁)은 텅 비어 있었고 사대문은 열려 있었다. 전각을 자세히 살피니 궁궐은 구름 위로 솟았고 누대는 찬란하여 그 모습이 진궁(秦宮 : 진시황의 궁전인 아방궁을 말함)의 장려함을 방불케 한다. - (중략) - 후궁에는 향기가 감돌고 산호(珊瑚) 대상(臺上)에는 화려한 거울만 덧없이 남아 있다. 난향(蘭香)이 전각 밖으로 풍기고 사람 살던 흔적도 구슬로 장식한 침상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물마다 문이 열려 있는데 지키는 자가 없으니 어디를 둘러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 용맹한 고니시도 천자(天子)의 옥좌에 절을 하고... - (하략) 또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한 다음날 (4일)왜군의 제 2대였던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의 부대도 서울에 입성했는데, 이 부대 소속 종군 승려였던 제타쿠의 조선일기(朝鮮日記) 기록에도 경복궁의 화려함이 찬란하게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이곳이 용의 세계인지,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인지, 보통 사람으로선 분간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 오히려 적군의 기록들에서 이렇게 경복궁의 완연함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측 실록과 서애집의 기록의 사실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도 이는 사관이나 유성룡 등이 이미 임금을 따라 몽진길에 오르면서 현장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며, 어쩔 수 없이 멀리서 본 풍경에서 짐작해 기록을 한 관계로 오해가 있을 수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일본의 다른 종군 승려 덴케이가 저술한 서정일기(西征日記)에는 5월 7일에는 궁전이 모두 초토로 변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실제로 우리 궁궐을 약탈하고 불을 지른 자들은 호전적인 왜장 가토 키요마사 부대의 소행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에 남아 있는 2일 새벽 무악재에서 보였던 불길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것은 당시 도성을 적에게 내어주기 전 군기시에 보관된 무기와 화약, 선혜청에 보관된 양곡들을 적의 손에 내어주지 않기 위해 불태웠던 불길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적을 이롭게 할 물품이나 문서기록 등은 당연히 폐기/소각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 측의 다른 기록에도 이와 같은 작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실제 역사 기록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임금과 조정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백성들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지엄한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이 있는 이유는 혼란의 과정에서 백성에 대한 상류층의 편향된 시각이 투영되었던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일본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이런 내용들을 근거로 우리 백성들이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정설로 고착시키고, 백성들은 물론 당시 지배층까지 비루한 사고를 가진 이들로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식민 우월주의의 근거로 이용했다 할 수 있겠다. 실제 기록을 잘 보존하고 가르치는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한국인을 비하하는 일제의 이러한 교묘한 식민 우월주의 사관(史觀)은 이외에도 매우 많은 예들이 있다. 과도한 국수/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이렇듯 과거의 역사를 보다 올바르게 바라보고 해석하여 스스로를 필요 이상 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자료 참고> - 조선왕조실록 디지털 검색서비스 - 신(新) 궁궐기행, 이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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