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섬세하게 조각된 대동여지도 판목과 실제 인쇄된 지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촬영) 예로부터 우리 나라는 - 특별히 일깨울 필요가 없을 만큼 - 지리 인식과 그 표현에 있어서 매우 성숙된 의식을 가지고 있던 나라였으며, 이는 각 지방에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지리자료를 종합해 만든 대동여지도가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 보아도 대단히 정밀도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외국으로부터 비록 지지(地志)는 그 수준이 덜하지만 지도(地圖)만은 극히 아름답고 우수하다라는 평을 받은 것을 보면 과거 우리 옛 조상님들은 고차원 정보 디자인 결과물인 지도 제작에 매우 솜씨가 좋았음도 아울러 알 수 있다. 이렇듯 상세한 지도를 오래 전부터 보유함으로써 국가 지리 데이터베이스의 수준은 높았지만, 아쉽게도 이 지도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하거나 볼 수는 없었다. 지도 데이터와 같이 복잡한 정보가 이미지로 얽혀 있는 자료를 쉽게 복사해 보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모든 백성이 공유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동여지도의 제작자로 우리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님의 진정한 업적은 단지 대동여지도라는 근대적 지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이전에 이미 청구도라는 지도를 만들어 냈으며, 이 지도는 실제 대동여지도보다 더 많은 지리적 내용을 담고 있는 한층 상세한 지도였다. 그러나 김정호는 당시 인쇄기술의 부족으로 필사로밖에는 복사할 수 없는 청구도로는 보다 많은 백성들이 값싸게 지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지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려 복사하는 방식으로는 지도의 정확성을 유지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추후 내용을 수정하거나 하는 작업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느꼈다. (한마디로 '버전 관리가 안된다'라는 뜻) 지도는 그 신뢰성이 극히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어느 것 하나라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김정호가 얻은 결론은, 지도를 목판에 새겨 쉽게 복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 인쇄 기술만 가지고도 한층 빠른 속도로 쉽게 대중에게 배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작 비용도 매우 저렴해진다. 수정할 내용이 있을 경우 목판을 수정하고 수정 시기를 적어 인쇄하면 되니 '버전 관리'에도 문제가 없어졌다. 다만 여기에서 생긴 문제가 있었다. 목판 제작 기술의 한계로 청구도만큼 글씨와 기호를 섬세하게 새길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는 것도 어려워서 예전처럼 데이터를 색으로 구분하는 방식도 쓸 수 없었다. 김정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청구도에 기록된 내용 중 상당수를 대동여지도에서는 뺐다. 내용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쉽게 배포한다는 목적에 더 부합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글씨로 해결할 수 없었던 사항들을 다양한 기호를 사용해 표시하여 가능한 많은 내용을 포함시켰고, 기호에 대해서는 지도 옆에 범례를 표시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는 오늘날의 지도와도 같다!) 또한, 지도의 편집과 분책을 절묘하게 만들어 쉽게 휴대하고 펼쳐 볼 수 있도록 했다. 김정호가 이룬 진짜로 큰 업적은 이러한 국가 지리정보 데이터를 '정보 디자인 미디어'로서 일반인에게 쉽게 보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쉽게 복사, 공유가 가능하고, 근거가 명확한 업데이트를 덧붙일 수 있게 함으로써 백성들은 상시 정확하고 상세한 지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실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때 기본 취지와도 그 의미면에서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다스릴 책임이 있는 임금님과 달리, 일반인이 부수적인 명예와 대가를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루어냈다는 점은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것이다. (참고로,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을 팔아먹는다며 김정호를 핍박하고 대동여지도 목판을 불태웠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정보 디자인을 하며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에게, 김정호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업적은 매우 많은 감흥을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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