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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대가, 뒤따르는 책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린다. 영장(靈長)이란 '영묘한 힘을 가지는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글을 보는 그대, 오늘 스스로의 생명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가?
무엇을 얼마만큼 먹었는가? 무엇들을 자연으로 배출했는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자연의 에너지 통로이다. 쉴새없이 자연 에너지를 섭취하고 배출하며 살아간다. 그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다. 태양으로부터 방사되는 에너지가 다양한 동식물 개체의 생명 사이클을 통해 변화, 합성되고, 먹이사슬을 따라 전달된다.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재의 인간은 그 먹이사슬의 가장 상부 구조에 위치하고 있을 뿐, 태어날 때부터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삶을 이어가도록 되어 있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기본적으로는 '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도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가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자연의 섭리다.
비록 지구의 역사에서는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오랜 시간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문명은 자연의 힘을 덜 빌리고도 인간이 더 많은 삶의 필수 요소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 주었다. 그 덕에 마냥 척박했던 자연은 비옥한 생산의 터전으로 바뀌었고,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양 이외에도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서히 경제가 발달하고, 문화가 꽃피는 풍요로운 시대를 맞은 인간은 생명 사이클의 유지 이상의 것을 추구할 능력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 21세기 현재, 최근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아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담았던 식품들을 생각해 보자. 돼지고기라던가, 양파, 혹은 계란. 두부나 햄 등의 가공 식품도 있을 것이다. 최근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가장 값싸게 살 수 있는 재화이자 생명의 연료가 식품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이 결코 단시간에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전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 양파 한 개가 우리의 장바구니에 담기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쳤을까. 식품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가장 간단하게 느껴지는 물마저도 결코 단순하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떠받치는 거대한 지구적 사이클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과 대비되는 인류의 물질적, 기술적, 사회적인 발전. 우리는 그것을 문명(文明)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문명의 사이클이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정지되었다면? 우선 인류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장소, 도시부터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개인들의 힘을 아무리 모아도 도시의 사람들을 먹여살릴 만한 생명 연료, 식품과 물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 물론 도시 바깥 지역이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먹을 것 뿐일까? 먹을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3대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단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우리 주변에는 거의 공짜나 다름 없이 흔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흔한 것들 중에는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것들, 의식주의 주축을 이루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물과 공기, 그리고 흙인데, 이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불과 1분 이내에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맨손으로 결코 물 한 방울조차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다. 인간에게 장비와 에너지가 주어진다면 기술로 합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아닌 이상 그 결과물은 결코 자연이 만들어주는 것과 같지도,또한  다양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저렴하지도 않을 것은 물론 충분한 양을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풍요로움은 쉽게 사라진다. 기술은 실험실에서는 만능일 수 있지만, 결코 자연의 스케일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원료를 자연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술인데, 어떻게 결과로서 자연을 능가한다는 것인가? 이것을 이론으로 말해주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열역학 제 2 법칙은 이미 우리가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중요한 것들이 거의 가격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쉽게 사용하고 파손시키고 있다. '가격'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치 기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흔한지 또는 귀한지에 좌우된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모든 것에는 그 대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며, 직접 돈을 치루어 계산할 수 있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최근 남한의 4대 강 중 하나로 한국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경상남북도 지역의 젖줄인 낙동강의 물이 점점 식수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이옥산에 오염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명시적 원인은 겨울 가뭄으로 인해 수량이 줄어들면서 강물에 포함된 공장 폐수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 한다. 이미 경상북도의 중심 도시인 대구광역시의 2개 취수장 중 1곳이 가동을 멈췄다. 다른 1개 취수장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농도가 검출되어 가동을 중단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식수대란을 염려해 공급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시민들에게 물을 일정시간 끓여 마실 것을 권장하고 있단다. 이론적으로 물을 10분 이상 끓이면 다이옥산의 90%가 제거된다고 한다고 홍보를 하고는 있지만, 그도 완벽 제거가 아니라 90%란다. 사실 낙동강의 물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경상남북도의 두 중심 도시인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간에는 늘 물 싸움이 있어 왔다. 또한 수량의 문제만이 다가 아니었다. 대구/부산보다 더 상류에 위치한 구미공단에는 놀랍게도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많이 위치하고있다. 오래 전부터 낙동강에는 페놀 등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되는 사고가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곤 했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로, 박정희 정권 당시 산업화시대를 맞아 국토를 개발하면서 고향인 구미 지역에 많은 공장들을 건설했다고 한다. 물론 구미시를 비롯한 인근 지역 사람들은 큰 공장들 덕에 일자리도 생기고 삶도 풍요로와져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관점에서 봤을때, 과연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의 주 식수원으로 쓰는 강의 상류에 저런 공장들을 짓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가 하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 공장들은 지금도 식수원인 낙동강에 폐수를 배출하고 있다. 비단 낙동강뿐이랴. 우리 나라의 수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아울러 물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오염물질 배출 기준치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기준치'라는 것을 정해두고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양심적으로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이렇게 자연이 변하게 되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데 말이다. 실제로 상류의 공장들은 작년부터 기준치 이하로 방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실제로도 그 규정을 잘 지키고 있었다면 도의적 책임 외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은 마시기 위험할 정도로 오염되고 있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상받을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법, 인간의 한계이다.


경제학에 '외부효과 (外部效果, Externalities)'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 주면서도 이에 대한 대가를 받지도 않고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내 집 앞을 쓸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쾌함이라는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식이다. (긍정적 외부효과)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외부효과는 현안에 대한 계산과는 무관하게 창출되는 효과이다. 이렇듯 긍정적 외부효과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만, 낙동강에 배출되는 폐수 같은 경우는 부정적 외부효과의 경우의 대표 사례이다. (물론 법을 위반하고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어떻게 계산하느냐의 문제이다. 물이나 공기와 같이 '매우 가격이 싼' 대상에 끼치는 나쁜 영향은 체감 수준도 낮고, 계산 결과도 크지 않다. 사실 모든 외부효과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멀쩡한 산을 관통해 건설된 경부고속철도 터널의 예를 들어 보자. 긍정적 효과는 터널 건설 목적과 연관되므로 쉽게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계산에 넣지 않은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터널 건설에 다른 부정적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쉽게 계산하기 힘들 것이다. 사실 어디까지 따져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논리와 효율 앞에서 부정적 외부효과는 가능한 축소되는 쪽으로 기준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가 없다. 누군가는 계산에 넣었던, 혹은 계산하지 않은 외부효과로 손해를 입는다. 낙동강 물 사건에서도 물을 그나마 안전하게 먹기 위해 끓이는 비용은 결국 개개인의 피해다. 그리고 물을 끓이기 위해 연료를 사용함으로 인해 증가하는 온실가스는? 피해자가 인간인 경우에는 '그나마' 쉽다. 말 못하는 자연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청정에너지의 대표 선수인 풍력발전은 대기 에너지를 감소시켜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해수 온도차 발전도 마찬가지다. 1:1로 계산할 수 없는 일도 너무나 많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변하고, 식물들이 적정 기온을 따라 북상 (바람의 힘으로 북쪽으로 씨를 날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과정에서 도로나 철도 경계선에 갇혀 전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대가는 결국 자연 순환의 최고점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될지, 어디에서 문제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비효과'로 대표되는 카오스 이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 단순한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인간은 그 근원을 분명히 자연에 두고 있고, 자연의 도움 없이는 단 몇 분도 삶을 유지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존재가 인간일진대, 어찌하여 알량한 잣대로 자연을 재단하고 '문제 없음(No Problem)'을 외치며 가치를 따져 취하려고만 하는 것인가? 이 세상에는 결코 공짜란 없으며, 모든 현상은 항상 그 원인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자연의 스케일보다는 미미한 인간의 기준에 다른 졸속적 대응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강물이 오염되면 지하수 개발을 하면 된다고도 한다.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비용, 높아진 물의 가격, 환경 파괴는 별도로 하더라도 그럼 도대체 그 지하수는 어디에서 온다는 말인가? 지하수를 퍼냄으로 인해서 얼마만큼의 면적에 강수량이 늘어나는지 혹은 줄어드는지, 주변 지역의 자연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계산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계산할 수 없다고 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이용해 문명을 이룩했고, 그에 뒤따르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만 한다. 물과 흙, 공기처럼 생명 그 자체이면서도 흔한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고, 이용할 때는 세밀히 따져 가며 해야 한다. 눈에 띄게 환경을 변화시키고 실제로 피해가 보고되는 일에 대해서는 물론이며, 인류가 스스로의 생명을 떠받치도록 만든 거대한 문명의 사이클이 만들어 내는 외부효과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인류가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새롭게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언제든 이야기를 나누고, 지엽적인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공동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잉여를 분배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말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가진 쪽에서 적극적 분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이 가진 쪽이 상대적으로 더 손해를 보는 다른 쪽을 메꾸어 준다면 불만도 적어지고 서로간의 신뢰도 쌓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임지는 자세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에 모두 해당되는 일이며, 한 나라의 소속이 아닌 세계 시민, 나아가 지구 공동체로써 다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를 유지하는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이 지구에는 약 69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또한 작은 단세포 생물까지 포함해 무한대에 가까운 수의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어느 개체도 지구 생태계의 중요한 일부이며, 분명한 생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비록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지구에 대한 권리는 이 모든 개체들 중의 1/n 에 불과하다. 지구는 결코 인류만의 것이 아니며, 스스로 만물의 영장으로써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권리에 걸맞는 큰 책임을 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by 티티 | 2009/01/21 01:57 | GreenPeace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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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at 2009/03/02 12:31

제목 : 자가용차 없이 살 수는 없는가?
주변사람들 가운데 여러 이유에서 자가용차가 없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지구환경을 위해서 자가용차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철도노동자인 그는 반생태적인 자동차문화를 반대하기에 당연히 운전면허도 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그는 주위에서 특별한 사람,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비록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자가용차를 구입하지 않고 대중교통과 두 다리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내......more

Commented by aa at 2009/01/21 08:42
다이옥신이 아니고 다이옥산이라 하덥니다
Commented by 티티 at 2009/01/21 10:30
제 오류였네요~ 수정해놓았습니다. 감사!!
Commented by 유레카 at 2009/01/21 12:42
결과에 대한 댓가는 참 톡톡하게 치르지 않을까요 ..자연은 건들이면 화나는 존재거든요 -.-;;
Commented by 티티 at 2009/01/26 12:05

ㅎㅎ 건들이면 화를 낸다기보다는... 그대로 돌려준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확실히 톡톡하게 대가를 치르는게죠 ~ㅋ
Commented by 상규니 at 2009/03/19 04:04
풍력 발전의 피해는 엄청난 소음도 한몫 한다고 하더군요. 아직까지는 그나마 사람의 거주지역에는 설치가 되지를 않고 있으니 느낄수 없다지만...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21 23:14
그쵸... 밤에 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 잘 알죠.. 그 부근에서 비박을 해 봤더니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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