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styl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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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렌즈로 담는 풍경의 매력
잠실철교에서 바라본 올림픽대교 남단, 풍납동 강변 아파트 단지.
달리는 전차 안에서 200mm (필름 환산 300mm) 망원렌즈에 F5.6 조리개를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셔터 속도는 대략 1/500)

Ai-S Nikkor 200mm F4


카메라의 교환 렌즈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망원렌즈를 참 좋아한다. 특히 망원렌즈로 잘 담은 풍경 사진은 밥 먹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망원렌즈를 마운트한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쩐지 평소와 달리 굉장히 스피디하고 박력있는 세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은 망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줌 배율이 높은 컴팩트카메라를 고른다는 오랜 벗의 이야기가 있었다. 망원의 확대 기능으로 피사체를 작게 잘라낼 수 있기 때문에 잘 정리된 구도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8배의 옵티컬 줌이 달린 니콘 쿨픽스 5400 같은 것을 좋아라 사용했으니까. 줌 배율이 높아지면 렌즈가 어두워지고 왜곡이 심해진다는 것 따위는 당시의 내가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풍경은 광각렌즈고 인물은 망원렌즈가 적당하다는 '상식'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렌즈의 기본적 특성에 따른 사용 경향에 대한 이야기지 실제 작화(作畵)의 과정에서는 어떤 렌즈건 그저 팔레트 옆에 놓여진 붓들 중 하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렌즈의 작화 특성에는 화각(畵角) 뿐만 아니라 피사계 심도, 그리고 왜곡 특성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가 더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초점거리의 렌즈라도, 또한 비록 초점거리는 다른 줌 렌즈인 경우 같은 초점거리에 맞추었을 때라 해도 렌즈의 광학 설계에 따라 이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18-200mm 줌렌즈의 200mm 와 80-200mm의 200mm의 느낌은 다르다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85mm이상의 초점 거리를 가진 렌즈를 망원렌즈(Telephoto Lens)라고 부르며, 85mm렌즈는 망원렌즈이지만 표준렌즈의 구조를 확대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초점거리가 300mm 이상으로 장초점이 되는 경우에는 초망원 렌즈(Super-Telephoto Lens)라고 부른다. 망원렌즈가 가진 기본적 특성은 아래와 같다.


- 좁은 화각
- 긴 초점 거리 (흔들림을 줄이려면 높은 셔터 속도가 필요하다)
- 긴 최소 초점 거리 (보통 1m 안쪽으로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 얕은 피사계 심도 (같은 조리개라고 해도 한층 초점이 얇게 맞아 배경날림이 심하다.)
- 광각 렌즈와 같이 주변부가 휘어 보이는 술통 왜곡(배럴 디스토션)이 없다.
- 거리감이 왜곡되어 압축되어 보인다. (장초점일수록 강한 압축효과를 보인다)
- 장초점을 구현하기 위해 덩치가 큰 편이다.

* 참고로 같은 장초점의 망원렌즈라 해도 매크로(접사용) 렌즈는 이와는 다소 다른 특성을 갖추고 있다.


망원렌즈 하면 보통 길고 무거운 렌즈를 연상하게 되어 사용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밝은 조리개에 번개처럼 빠른 초점을 잡는 고성능 줌 렌즈라면 200mm급만 되어도 무게가 1kg 을 넘어가고 웬만한 가방에는 휴대가 어려울 만큼 커지지만, 의외로 한두 가지만 살짝 타협하면 재킷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는 작고 가벼운 망원렌즈들도 얼마든지 있다. 가격도 300mm급의 보급형 줌이면 중고품으로 10만원 정도에도 살 수 있을 만큼 제법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망원렌즈를 단순히 확대 기능뿐만이 아니라 앞서 소개한 특성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망원렌즈답게 쓰려면' 어느 정도 기본기를 갖춘 장비를 선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스포츠 촬영이 아니면 빠른 작동 스피드는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삼각대 없이 주로 손에 들고 찍고 싶다면 F4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는 밝은 조리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경날림은 고사하고 꽤 햇빛이 강한 대낮에도 삼각대 없이는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을 수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두운 조리개, 또는 주변이 어두워서 광량 부족으로 손에 들고 찍기 어려울 만큼 셔터 속도가 나오지 않는 문제는 삼각대를 쓰면 해결된다.)


망원렌즈는 얕은 피사계 심도로 배경을 부드럽게 지우는 데 좋기 때문에(포그 효과) 주제를 부각시키기가 매우 쉽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조리개를 조이는 것보다 개방해서 사용할 일이 많기 때문에, 중급 이상의 망원렌즈라면 최대 개방한 상태에서도 높은 선예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보통은 배경날림(아웃포커스)을 많이 사용하는 인물사진에 많이 사용하며, 85mm F1.4 등 극한의 얇은 심도를 가진 렌즈들로 인물을 찍으면 강력한 포그 효과 덕분에 소프트 필터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연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망원렌즈를 풍경에 사용하면 특유의 압축효과로 먼 거리에 늘어놓여진 대상들을 손에 잡힐 듯 바짝 당기는 느낌으로 담을 수가 있다. 같은 장소에서 광각 렌즈를 사용했을때 약간 맥이 없이 널부러진 광경이 나올 때라도 망원 렌즈는 바짝 붙여 줄을 세우기 때문에 어쩐지 굉장히 박력있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또한 도시 풍경 등 직선이 많이 존재하는 풍경에서 망원 렌즈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직선을 직선답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심도가 얕다고는 해도 조리개를 조이면 되니 문제될 것이 없다. 좋은 풍경이 많이 실린 사진잡지들을 보면 마치 광각처럼 보이는 넓은 정황을 담았으면서도 의외로 망원 렌즈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망원렌즈 풍경 사진은 이렇듯 굉장히 좋은 점이 많지만, 단순히 값비싼 고급 장비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상당히 있기는 하다. 일단 망원렌즈는 화각(보이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광각 렌즈에 비해 상당히 뒤로 물러나야만 같은 범위를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피사체와 거리를 멀리 벌려야 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인력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이 생기는데, 장초점일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 적절한 촬영 위치가 허공이어야 하는 경우 (사다리 같은 정도로는 결코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
- 대기 상태(시정)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 중간에 불필요한 장애물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 문제 때문에 나는 정말 헬리콥터를 한 대 사거나 등에 날개라도 달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날도 있지만, 결코 불가능한 문제이다. 두 번째의 경우도 제법 어렵다. 날씨 변화가 심하고 연중 황사의 영향을 받는 우리 나라는 의외로 대기가 깨끗한 날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공해까지 심한 도시의 경우는 더욱 상황이 나쁜데, 유일한 해결 방법은 어이 없게도 공기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 등 공기가 깨끗해지는 날이 극히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맑은 날이라도 300mm 이상의 초망원인 경우에는 어쩔 때는 아지랑이 등 공기가 일렁이는 모습까지 보여 선명한 영상을 담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촬영 거리를 벌리는 경우에 중간에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끼어드는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망원렌즈 풍경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무거운 렌즈를 들고 목표물 주위를 큰 반경으로 빙빙 돌고 건물이나 산 등에 수없이 오르내리며 원하는 구도를 잡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노력이 대단히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의 양과 방향 역시 조절할 수가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타이밍은 정말로 찰나가 된다. 특히 장초점일수록 더 큰 반경으로 헤매야 하기 때문에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데, 찰나의 타이밍과 장소를 쉼 없이 찾아내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노력이 좋은 사진을 얻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말 그대로 광활한 세상에서 언제 어디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바늘 구멍을 기어이 찾아내어 찌르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고급 장비라는 요소는 단지 예산만 있으면 충족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무게가 1kg이 넘는 고급 망원 렌즈를 휘둘러가며 하루만 거리를 쏘다녀 보면 분명히 하루 정도는 전신 근육통에 고생하게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풍경사진은 장비의 질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리는 운과 사진가의 지극한 정성으로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찬스를 발견했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성공적으로 만족시키고 제대로 된 망원렌즈 풍경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보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진가가 휘두르는 여러가지 '붓'들 중 하나, 망원렌즈에는 그 만큼 대단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역시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처음 망원렌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80-200mm나 80-400mm 같은 중망원을 아우르는 줌 렌즈를 사용하는 편이 편할 것이다. 사실 80-400mm 렌즈의 경우 유명 사진가들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by 티티 | 2009/03/05 20:36 | 사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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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03/05 23:28
'어떤 렌즈건 그저 팔레트 옆에 놓여진 붓들 중 하나' 라는 부분에 동감합니다.
사진 동호회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인물용(풍경용)으로 주로 쓸건데 어떤게 좋을까요?' 라고 문의 왔을 때이거든요...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알려달라고 할 땐 정말 난감해서요...T_T
요즘은 거기에 '가격이 싼걸로...'라는 옵션이 붙기에 그냥 그럴 땐...'번들렌즈 쓰시죠 그것도 나쁜 렌즈는 아닙니다. 좋은 렌즈 나쁜 렌즈가 있는게 아니라 렌즈의 특성이 내가 찍고자 하는 것에 맞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나쁜 렌즈라면 시장에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판매되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긴 합니다만...

정말 '운'도 중요하지요...지금까지 제가 촬영한 사진 중 최고로 꼽는 것은 3만원짜리 중국제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한 몇컷입니다. 지금 장비가 백만원 넘어가고 3백만원 넘어가도 아직도 그 영상만한걸 못만들어 낸 것을 보면...'내가 요즘 그 운을 찾으러 다니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긴 합니다 T_T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05 23:39
정말 공감가는 감상이여요.
길고 재미없게 쓴 것 같은데... 제 글을 이렇게 제대로 읽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_^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03/05 23:49
이 글을 제가 활동하는 한 동호회에 올려도 될런지요?
니콘클럽(www.nikonclub.co.kr) 입니다.
렌즈 이야기 하는 사람들 많기에 티티님 글을 링크 걸까 합니다. 허락해 주시면 글 작성해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05 23:51
아~~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시군요 ^_^
거기 올려도 될 만한 수준의 글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

사실 저도 거기 회원인데... 아주 가끔씩 중고장터만 기웃기웃한다지요 ^^;;
올리시고 나면 알려주셔요~ 찾아가 볼께요 ㅋㅋ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03/06 08:45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06 08:48
으헉! 확인했습니다~ 발췌까지 따로 해 주시다니 ㅠ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東林 at 2009/03/06 10:34
티라노님과 티티님이 같은 티 씨 라서 그런지 매우 친하신것 같습니다.

니콘클럽 회원입니다.
티라노님이 링크 걸어 주신 글 따라와서 읽고 글 남깁니다.

두 분의 사진에 대한 열정에 고개 숙여지네요.......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06 12:28
아~~ 이거 반갑습니다 ^_^
Commented by pinetree at 2009/03/06 13:19
니콘동에서 왔써유...
글을 보니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
Commented by 티티 at 2009/03/06 18:30
반갑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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