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styl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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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회색빛 아침
양화진나루, 당산철교에서 북쪽으로 강을 건너는 지하철의 차창으로 바라본 국회의사당.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부연 회색빛 아침 안개에 파묻혀 있다.
왕복 8차로 도시고속도로인 올림픽대로와 여의하류 램프 도로, 옛 강변도로인 노들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2006년 1월, 차가왔던 겨울 아침의 사진. 




by 티티 | 2008/08/31 15:01 | 스토리 in my Mind | 트랙백 | 덧글(0)
어도비 라이트룸 2.0
많은 기능이 대폭 개선된 어도비 라이트룸(Adobe Lightroom) 2.0



어도비의 사진편집, 정리 도구인 라이트룸이 얼마 전 2.0으로 업데이트가 되었다.
2.0버전이 출시되면서 1.0에서 무척 아쉬웠던 많은 부분들이 큰 폭으로 개선되었다. 비록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아 있고, 새로운 기능에 대해서 몇 가지 기능들이 조금 더 추가되었으면 하지만, 그래도 라이트룸의 개발팀이 무척 많은 노력을 했음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번의 업데이트로 드디어 (기능은 보잘 것 없지만) 속도와 오거나이징 면에서는 우수했던 구글 Picasa를 그만 사용해도 되는 이유가 되었다. Picasa냐 라이트룸이냐는 그간 반년 이상 내 사진 정리 방식을 크게 혼동시켰던 것이다. 구글의 Picasa는 약간은 불안한 라이브러리 인덱스 기능때문에 DB의 종속성을 낮게 하는 데에 매우 문제가 많았었는데, 새 버전의 라이트룸은 카탈로그 파일을 명확히 분류하여 원하는 위치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고 단순한 보조 편집 툴을 넘어 강력한 오거나이저가 되었다. 이렇게 소프트웨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나의 사진 스토리지 하드웨어도 똑같이 안정되었다.


무엇이 좋아졌는지 보면, 


1. 사진 선별기능 더욱 강화

다양한 메타데이터별 사진 선별 기능을 한층 확대했고, 기준을 직접 사용자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인터페이스가 위아래 좌우로 분산되면서 약간 혼란스러웠기는 했으나, 충분히 찾을 만한 수준이었다. 


2. 메타데이터 편집 기능 더욱 강화

예전보다 태그(키워드)와 여러 메타데이터를 편집하는 데에, 작업 동선을 상당히 축소하여서 피로감을 줄였다.
그러나 아직 아쉬운 점은 많다.


3. 라이브러리와 편집(Develop) 기능 좀더 명확하게 분리

편집 기능 자체에는 큰 차이는 없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인터페이스가 좀더 단순해졌고 분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샤픈 기능이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이 눈에 띈다.


4. Flickr 연동 플러그인 안정화, 각종 플러그인 관리 기능이 더욱 좋아졌음.

이것은 라이트룸과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간 플릭커 플러그인이 안정되었고, 이러한 각종 플러그인들을 좀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플러그인 매니저가 생겼다. 라이트룸도 바야흐로 오픈 플랫폼으로 가는 것일려나.


5. 듀얼 모니터 지원
 
공식적으로 듀얼 모니터 작업 공간을 지원한다. 또한 양쪽 모니터의 컬러 프로파일에 맞추어 이미지를 출력해 주는 것 같다. 이로써 작업 창과 프리뷰 창을 분리할 수 있어서 한층 편하게 결과를 보며 작업이 가능해졌다.


6. 작업 속도 향상

예전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천만화소급 이미지를 편집하는 데에는 높은 사양이 필요한 것은 여전하다.


7. 라이브러리 기능 강화, 카탈로그 파일 선택, 관리 기능 추가
  
브라보! 드디어 라이트룸에서도 구글 Picasa보다 우수한 형태로 라이브러리를 폴더구조 그대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미지 파일 개수를 자동으로 계산해서 보여주므로, 무척 편하다. 이 기능이 부족하여 편집된 파일을 관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라이트룸을 사진 오거나이저로 사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Picasa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태그, 메타데이터 분류 기능이 있는 라이트룸의 장점으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 또한 사진 DB의 인덱스 역할을 하는 카탈로그 파일을 DB와 같은 디스크에 둘 수 있고, 카탈로그 파일을 훨씬 자유롭게 선택해 관련된 사진 DB를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오거나이저의 성능이 이만큼 좋아졌다면, 통계 기능을 포함시켜 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티티 | 2008/08/30 19:29 | 사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나의 미디어 스토리지 시스템
내가 구성한 미디어 스토리지의 모습.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미디어 스토리지를 구성하고 테스트해가며 안정시키는 데에 거의 7-8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물론 중간에 신경 못 썼던 기간도 많았고, 정리/편집 소프트웨어의 변경으로 하드웨어 구성이 변경되기도 했다.

현재 내가 사용중인 미디어 스토리지는 실 사용가능한 용량 1테라바이트이며, 아래와 같은 장비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장비가 이 사진에 다 나오지는 않았다)

- (노트북용) 익스프레스 e-SATA 2포트 RAID 인터페이스 카드 1개
- 500GB SATA II 하드디스크 4대 (실사용 / 백업 세트 각각 2대씩)
- e-SATA 외장 하드디스크 케이스 2대
- 후지쯔 Calmee COMBO SATA 하드디스크 크래들
- e-SATA 케이블 3줄
- 백업 디스크 보관용 플라스틱 케이스
- 소니 외장형 IEEE1394 DVD-RW 드라이브 (5년 넘은 구형모델)
- 5구 멀티탭

미디어 스토리지를 구성할 때 가장 주안점은 아래와 같았다.

- 노트북에 사용 가능한 구성
- 적당히 충분한 액세스 스피드
- 데이터 안정성
- 낮은 구성/유지비용
- 쉽고 빠른 백업
- 하드웨어 트러블시 교체가 쉽고, 전체 시스템의 가용성을 최대한 유지할것


(인터페이스)

이 시스템의 중심은 노트북의 익스프레스 슬롯에 사용되는 e-SATA RAID 인터페이스 카드로, 내 이동식 작업 스튜디오 역할을 잘 하고 있는 인스피론 1720 노트북이 마침 익스프레스 카드 슬롯을 갖추고 있어서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기도 하다. 
국내 제조사인 강원전자에서 만든 이 카드는 2개의 접속 포트가 있어 스트라이핑과 미러링의 두 가지 RAID 모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e-SATA 인터페이스 카드는 기존의 USB 2.0 방식과는 비교가 안되는 액세스 스피드를 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의 가치를 충분히 높여주는 핵심에 해당한다. 어도비 라이트룸 등의 소프트웨어에서 대용량 카탈로그를 액세스하는 것도 초고속은 아니라도 나름 지리하지 않은 속도를 보여 주고, 500GB 하드디스크 한 대를 서로 복사하는 데에 2시간도 안 걸려서 시간을 매우 절약해 준다.
그러나 2만원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의 카드라서 그렇겠지만, 아쉽게도 각각의 포트에서 PM(포트 멀티플라이어) 기능은 지원하지 않아서 한 포트당 한 대의 하드디스크만 접속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안정성을 위해 RAID 기능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노트북에는 굵은 e-SATA 케이블이 매우 뻣뻣하고 부담스러운데다가 내 노트북의 익스프레스 슬롯은 크기가 매우 커서 이 카드를 부착하면 매우 불안하게 걸려있게 되는데, 나는 명함 종이를 작게 접어서 끼워넣어 해결하였다. (원시적이지만 쓸만하다 ^^;)


(디스크)

현재 두 대의 500GB SATA II 하드디스크를 각각 미디어 파일과 사진작업 저장용(노란 니콘 스티커 부착된 케이스)으로 역할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미디어 디스크는 약 85%, 사진작업 디스크는 70% 정도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영화 등을 거의 다운로드받지 않기 때문에 미디어 디스크는 매우 느린 속도로 채워지고 있고, 사진작업 디스크는 2006년 처음으로 천만화소급 DSLR 카메라를 사용한 이래 현재까지 연간 채워지는 속도를 보면 내년 초여름까지는 새로운 대용량 디스크로 교환하지 않고도 너끈히 사용할 수 있을 예정이다. 참고로 사진작업 디스크에는 내가 2000년부터 지금까지 8년 넘게 찍은 약 8만 프레임 분량의 모든 아날로그/디지털 사진들이 이벤트와 시간별로 전부 정리되어 담겨 있어서, 내가 사진 저장용으로 디스크 용량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추이로 더욱 사용하게 될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미디어 스토리지를 구성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이 귀중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목적이었기 때문에, 디스크 트러블의 위험을 줄이고 더욱 자주 백업을 할 수 있도록 디스크를 2대로 분리시켰다.

하드 디스크를 담는 외장 케이스는 지난 몇년간의 사용으로 제조업체의 신뢰성이 믿음직스러웠던 국내 제조사 LETO GMS의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쿨링팬 냉각방식에 USB 2.0과 e-SATA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장비이다. 디스크가 잦은 사용으로 열을 받르면 쿨링팬 소리가 아주 조용하지는 않지만 견딜만 하고,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엇보다 전원 어댑터가 가장 안정되게 연결되는 형태라서 선택하였다. (PS/2 포트와 같은 형태로 연결되는 어댑터는 시간이 갈수록 쉽게 빠지는 문제가 있어서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조용한 공랭식 알루미늄 케이스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무척 값이 비쌌다.) 또한 각각의 케이스를 접속하는 e-SATA 케이블에는 다른 색 태그로 표시를 해서 어떤 디스크의 케이블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백업을 위해서는 디스크 하나를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업)

백업 시스템도 매우 간단하다. 후지쯔에서 내놓은 Calmee COMBO 라는 하드디스크 크래들이 있는데, e-SATA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고, 위쪽에 백업용 하드디스크를 꽂기만 하면 바로 접속이 된다. 백업하려는 디스크 외의 다른 디스크를 먼저 분리한 뒤, 이곳에 크래들의 e-SATA 케이블을 접속하고 백업 세트 하드디스크를 꽂은 뒤 전원을 켜기만 하면 된다. 두 번째 디스크도 같은 방식으로 하는데, 이렇게 두 대의 디스크를 1:1 로 복사하는 데에 약 3시간 40분 정도가 걸린다. e-SATA 인터페이스는 시스템 자원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아 백업 중에도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른 작업을 하면서 대용량의 파일을 수십만 개씩 복사해도 거의 오류를 내지 않는 윈도우 비스타가 큰 도움이 된다. 
백업은 주기적으로는 한 달에 두 번 정도이고 중요한 시점에는 특별 백업. 이렇게 백업을 마친 하드디스크는 원래의 보관 케이스에 담아 서랍에 넣어두면 끝.
여기에 집에 있는 오래된 DVD-RW 드라이브를 하나 더 추가해서 DVD 플레이용과 입력, 노트북의 광드라이브를 같이 써서 빠른 디스크 복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록속도가 저속인 드라이브지만 읽기 성능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역시 시스템 자원을 거의 소비하지 않는 IEEE1394 연결도 믿음직스럽다.


(전원)

전체 스토리지 시스템은 다른 것들과 구분된 멀티탭에서 전원을 공급받도록 해서 전원공급의 안정성도 높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어댑터로 흘러드는 전류까지 모두 차단해서 어댑터의 사용 수명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비용은 백업 장비까지 전체적으로 42만원 정도가 들었다.
42만원이면 비싼 것 같지만, 두 대의 새 1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 가격을 생각해 보면 그리 비싼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부품들을 조합하면서 완성된 것이라 생각보다 목돈이 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개별 구성요소가 무척 단순하고 상호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고장이 나거나 부품을 교환할 일이 생겨도 어디 서비스를 보내거나 해서 전체 시스템이 모두 사용불능이 된다던가 하는 복잡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이 시스템에는 더 많은 수의 디스크를 접속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년 중반쯤 이 시스템의 저장용량이 부족해지게 되면, 반드시 용량이 부족한 디스크를 더욱 대용량의 디스크로 교체해야 한다. 물론, 백업 세트까지 모두 2대를 맞추어 교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환 후 잉여 디스크는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씩 남게 된다.)





by 티티 | 2008/08/30 14:29 | 사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장항선 철로변 풍경
아름다운 푸른 논이 마치 커다란 잎사귀를 땅에 펼쳐 놓은 듯 하다.
(광천에서 대천으로 가는 장항선 철로변에서)



이번 역은 광천, 광천입니다.
광천역에서 내리시는 손님, 안녕히 가십시오.





by 티티 | 2008/08/26 22:58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고지도에서 본 우리 집 부근
1872년 지방지도(과천)에서 본 내가 사는 곳 부근. (녹색 사각형)
노량진 나루에서 남태령을 넘어 수원으로 가는 길(붉은 줄)은 옛 삼남대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6년 전의 지도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내력이 오랜 동네라 주변에 많은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규장각의 고지도 DB를 뒤지다가, 우연히 이 과천지도를 보고서, 한번 내가 사는 곳의 위치를 찾아보기로 했다.

지도를 볼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지도의 방위를 맞추어 방향감각을 찾는 일이다. (이것을 '지도를 정치한다'라 한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관악산을 찾았고, 붉은 줄로 표시된 길이 넘어가는 고개가 남태령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자 지명도 옛날 그대로이기 때문에 매우 찾기 쉬웠다.) 그러나 보통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리는데, 이 지도에서는 길이 계속 위로 올라가지 않아서 이상했다. 그러나 우측에 마치 강물과 같은 지형이 엷은 푸른색 칠로 그려져 있어서 그쪽에 씌어진 글자들을 뒤져보니 역시 이쪽이 북쪽임을 표시하는 북(北) 자를 찾을 수 있었다! (북쪽을 비스듬하게 그린 것이다.) 북(北) 자 아래에는 '노량진' 이라고 씌어 있었고, 놀랍게도 강가에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건물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용양봉저정은 정조임금님이 지은 노량진 행궁의 중심 건물로, 예전 정조대왕 능행도(正祖大王 陵幸圖) 8폭 병풍 중 첫번째 - 노량주교도섭도(鷺梁舟僑渡涉圖) 그림 속의 건물을 보고 직접 위치를 찾아가 본 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지도를 거진 파악한 뒤에는 정말 어려울 것이 없었다. 관악산 기슭을 더듬으니 우리 집 뒤쪽의 관악산 능선에 있는 옛 절, 관음사가 그려져 있었다. (의외로 지도가 상세해서 놀랐다) 우리 집 앞길이 일명 '관음사 등산로' 아닌가! 관음사가 들어서 있는 산골짜기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또한, 노량진에서 남태령을 넘어 내려오는 붉은 줄의 삼남대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바로 인덕원천이 나타나고, 그 줄의 끝에는 '남쪽, 수원으로 가는 길 15리' 라고 씌어 있었다. 이 길은 정조임금님의 현륭원 능행, 즉 화성 원행길로도 씌어졌던 바로 그 길이다.

한눈에 조금 엉성해 보이는 지도이지만, 이 지도로 충분히 길을 찾고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신기했다.




위의 고지도와 비슷한 각도로 기울여 표시한 구글 위성 사진. 이렇게 보니 정말 비슷하다! :D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을 턱이 없었을텐데...

그리고 재미있는 것 하나 더, 위쪽 고지도를 보면 남태령 옆 관악산 바로 남쪽에 기와지붕 건물이 하나 보인다.
글씨가 희미해서 잘 읽히지는 않는데, 그 부근은 과거 정조임금님이 지으신 과천행궁(온온사) 자리이다.
구글 위성 사진을 보면 그 부근에 우리나라 과천 제 2 정부종합청사가 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에 달라지는 것 없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씩 찾아보시길! '인디아나 존스' 영화 속 보물지도가 따로 없다구요~!




by 티티 | 2008/08/24 16:24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규장각 고지도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상주(尙州)-문경(聞慶)-충주(忠州) 구간.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교교한 산줄기와 그를 넘는 나라의 으뜸 고갯길 조령(鳥嶺)이 잘 나타나 있다.
(자세히 보면 조령 관문의 성벽도 보인다.)
목판인쇄 형식에 맞추느라 산줄기의 표현이 동여도와 조금 다른데, 투박하면서도 박력이 있다.  



비슷한 구간을 표시한 동여도(東輿圖).
김정호 선생님의 동여도는 대동여지도 편찬의 기본도로 사용되었으며, 필사본으로만 복사가 가능했지만
예술적 표현 면에서는 한층 뛰어나고, 수록된 정보 면에서도  대동여지도보다 5,000개 이상 많은 양을 수록하고 있는 지도이다.
대동여지도에도 그려져 있지만, 산 위의 붉은 불길, 봉화대가 설치된 산 그림이 흥미롭게 눈에 띄었다.


자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막동아! 내 오늘 규장각에 갈 것이니 채비하거라!" 어험~~

놀랍게도 규장각.. ㅎㅎ 정보기술이 발달한 21세기의 한국 선비들은 이제 지도를 보러 직접 규장각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으로 클릭클릭 규장각 나들이 다녀오고, 바다건너 서양의 인공위성 사진도 둘러보고..

암튼 이 웹 사이트에서 수많은 한국의 고지도들을 원본 크기 스케일(이 그림들보다도 훨씬 크게)로 VR로 아름답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랑인 고지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번 구경 가보시길.
자자! 애들도 환영! 구경은 공짜! :D





by 티티 | 2008/08/24 14:39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듀카티 몬스터 S4R 바이크 (Revised II)
회사 건물에 듀카티가 왔다.
손가락 끝으로 슬쩍 엔진을 만져 봤는데 아직도 깜짝 놀랄 만큼 뜨거웠다!!

붉은 트러스 프레임과 거대한 미쉐린 광폭 타이어, 그리고 브렘보 로고가 선명한 프런트 디스크브레이크 캘리퍼, 육중한 쿨러와 카본 머플러. '몬스터(Monster)'라는 이름처럼 힘이 넘치는 강렬한 디자인과 컬러로 마음 속에서 뭔가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바이크였다. 바이크에 큰 관심은 없지만, 압구정동의 듀카티 매장 앞에서는 어쩐지 발이 멈춰지곤 했던 나였다. ㅎㅎ 얼른 올라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 혹시나 주인이 타고 사라져버릴세라 - 3컷씩 브라케팅을 해 가며 구석구석 2백 프레임 가까이 촬영을 했다. 정리된 사진들을 추가로 올려 둔다.

(각 사진들의 설명은 울 사장님께 배운 지식들을 토대로 작성했는데, 틀린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앞쪽의 전체적인 모습. 앞쪽 느낌은 무겁고 육중하다.
커다란 라디에이터가 엔진의 강한 출력을 상징하는 듯 하다.



뒤에서 바라본 전체적인 모습. 치켜 올려진 꼬리 덕에 앞에 비해 뒤쪽은 날아갈 듯 하다.
약간씩 커스텀 부품들이 추가된 것이 느껴진다.



붉게 칠해진 트러스 구조 프레임과 그 안에 품어진 엔진의 모습.
라디에이터 패널이 2개 붙어 있는데, 하나는 엔진, 다른 하나는 오일 쿨러이다.



브렘보 디스크 브레이크 캘리퍼.



앞쪽 휠과 디스크 로터, 브레이크 캘리퍼의 모습.
디스크 로터에는 빠른 냉각을 위한 방열공이 치밀하게 가공되어 있다.



붉은색 듀카티 로고가 선명한 연료탱크.
클래식한 느낌이 든다.


연료 주입구와 탱크의 모습.
작은 글씨로 안내문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카본 머플러.



엔진과 트랜스미션(변속기)부. 카본으로 된 보호 커버가 씌워져 있다.
부품들의 색 조합이 참 예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다.



무늬만 카본이 아닌 진짜 카본! 빨간 색 부분을 살짝 손으로 만져보니 무척 뜨거웠다!
이 붉은색 부품은 건식 다판 클러치라고 한다.



오일 라인. 오일을 식히는 오일쿨러와 엔진을 연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이프가 접속되어 있는 통은 실린더 헤드와 블록?


속도계(스피드미터). 선형 속도계로 시속 260km 까지 표시되어 있다.
1500cc 소형차인 내 차는 220km 까지가 끝이다. (개인적 최고속도기록 197km)



엔진 시동 키. 이 곳에 키를 넣어 돌려야 몬스터의 엔진은 비로소 힘을 얻는다.



몬스터 S4R 이라는 이름이 써져 있는 엠블렘 플레이트.



후륜. 안쪽에 디스크 브레이크의 로터가 보인다.
전륜은 2개의 로터가 장착되어있지만, 후륜은 1개뿐이다.
자전거도 그렇지만 역시 2륜차는 고출력이라도 앞바퀴 제동이 제일 중요한가보다.



이 스위치는 '킬스위치'라고 한다.



이것도 알 수 없는 스위치.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순정으로 나오는 사양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타이어.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
엔진이 고출력이니까, 라디에이터도 클 것이다.



측면과 엔진부의 전체적 디테일. 발을 올려두는 발판들이 작은 날개처럼 보인다.
커다란 카울로 주요 부품들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는 네이키드 타입 바이크의 포스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검정색 연필처럼 꽂혀 있는 부품은 클러치 케이블 들어가는곳.



황동으로 만든 연료 주입구 뚜껑. 스포츠 카에서 볼 수 있는 느낌. 




by 티티 | 2008/08/23 00:07 | 스토리 in my Mind | 트랙백 | 덧글(4)
섬진강 하류, 하동포구의 밀물 - 경상남도 하동군
섬진강 하구, 광양만에서부터 하동포구까지를 표시한 구글 위성 사진. 하동포구에서 광양만까지는 약 20km가 안 되는 거리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이 위성사진의 가장 위쪽, 하동포구 부근의 모래톱에서 오후 밀물 때 촬영한 것이다.
섬진강은 우리 나라 4대 강 중 하나이지만, 한강과 더불어 하구둑이 설치되지 않아서 밀물 때면 바닷물이 하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다.
비록 섬진강댐의 건설 이후 수질이 악화되긴 했으나 우리 나라의 큰 강들 중 자연의 본디 모습이 가장 잘 간직된 강이기도 하다.

관련 포스트 :  옥정호(玉井湖), 섬진강댐 (운암수력발전소) -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4예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하동 포구와 섬진대교. 이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건너편은 전라남도 광양시이다.
석양의 햇빛이 비치는 강 모래톱에 서서히, 그러나 빠르게 물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은 바다(광양만)에서 무려 20km 가까이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간조(썰물)때에는 모래톱이 넓게 드러나는 곳이지만, 밀물 때에는 물이 차오른다.



물이 들어오는 모습. 물이 들어올때 강바람에서는 신기하게도 찝찔한 바다 냄새마저 느껴진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에 바짝 말라 있던 강은 다시금 물 아래로 가라앉아 생명을 충전한다. 



멀리 경전선 섬진강 철교가 보인다.
강물이 들어오는 모습을 한 부부가 바라보고 있다.





썰물 때 이 장소의 다른 사진들 보기 : 국도 19호선 : 하동(河東), 섬진강변 구간





by 티티 | 2008/08/22 23:49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게티스버그 연설 (Gettysburg Address), 1863년 11월 19일 -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영화 게티스버그(Gettygburg, 1993) 속의 주연 배우들의 기념 촬영 사진. 당시의 실제 인물들처럼 멋지게 분장을 했다.
앞줄 가운데의 인물이 남부연합 총사령관 로버트 리 중장 역을 맡은 마틴 쉰이다. (영화에서 완전 멋있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부분을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복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더 이상 보태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이뤄 낸, 그러나 미완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not dedicate ― we cannot consecrate ― we can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Abraham Lincoln’s Gettysburg Address (November 19,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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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스버그 전투는 미국의 남북전쟁(The Civil War) 기간 중 1863년 7월 1일부터 7월 3일까지 3일간,
펜실베이니아 주 아담스 카운티의 작은 마을인 게티스버그 인근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일컫는다.
조지 미드 소장이 이끄는 약 8만 명의 북군과, 로버트 리 중장이 이끄는 약 7만 5천명의 남군이 격전을 벌였으며, 양측 사상자는 5만 명이 넘어 모든 전쟁 기간을 통틀어 가장 참혹한 전투였다. 또한, 이 전투의 패배로 워싱턴을 공격해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했던 남군의 전략은 실패로 끝나며, 남북전쟁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전투가 끝나고 몇 달 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짧은 연설은 '게티스버그 연설'로 불리며,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의미를 남기게 되며, 게티스버그 전투가 벌어졌던 전역은 훗날 게티스버그 군사공원으로 지정되어 후세를 위해 역사의 큰 전환점의 장으로 보존해두고 있다. 땅이 넓은 미국이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로써는 부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남북전쟁의 핵심 원인을 '노예제도 폐지'로 알고 있으나, 사실 노예제도는 그저 작은 한 가지 부분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남부 사람들의 신념과, 북부 사람들의 대의가 서로 충돌한 큰 사건으로 보는 것이 맞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북부가 남군을 패배시키고 승리함으로써, 독립 후 작은 연방국들의 모임에 불과했던 미국은 비로소 합중국이라는 한 나라로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미국에 '제 2의 건국'과도 같은 큰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게티스버그 전투가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의 전날에 판가름이 났다는 것은 참으로 신의 장난과도 같은 우연이라 느껴진다. 


by 티티 | 2008/08/22 21:37 | History | 트랙백 | 덧글(0)
영산강 하구둑, 영산호 - 전라남도 목포시, 전라남도 무안군, 영암군
영산강 하구둑과 배후 호수인 영산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글 위성 사진. 영산호 위에는 구름이 깔려 있다.

영산강 하구둑은 영산강과 서해바다가 연결되는 하구를 막아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조제이다.
영산강 하구둑은 길이 4,350m, 최대높이 20m의 토석제(土石提) 방식으로, 배후 호수인 저수량은 2억 5000만 톤이다.
영산강유역 개발 사업 1단계인 장성, 담양,나주, 광주호의 완공에 이어, 제 2단계 핵심사업으로 1978년에 착공, 1981년에 완공되었다.
상부에는 왕복 6차로 도로가 건설되어 목포시와 무안군, 영암군, 특히 대불공단을 육로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8개의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철제 갑문 하나는 높이 13.6m, 폭 30m, 그리고 두께 3.6m로 그 무게는 480톤에 달한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30톤급 선박정도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길이 30m, 폭 6m의 통선문(通船門)도 있다고 한다.
 
참고 포스트 : 담양 금성산성(潭陽 金城山城) -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사적 제 353호)
(중간 사진에서 담양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산강 하구에서 서해를 향해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구글 위성사진의 카메라 시야를 조절해 보았다.
(오른쪽에는 예전에 소개했던 압해대교의 공사 현장도 보인다.)
영산호의 담수를 새로이 마련된 간석지에 공급하는 관개 시설도 완공, 6,100 헥타르의 농지가 새로이 생겨났다.
하구둑과 직각 방향으로 대불방조제 4,280m를 완공함으로써 더욱 많은 간석지(갯벌)가 개간되고, 대불산업공단의 터전이 되었다.
대불산업공단은 취지에 걸맞지 않게 한동안 거의 방치되었다가 조선관련기업이 입주하면서 다소 활기를 띠게 된 곳인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의 '전봇대 사건'으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꽃산'이라는 예쁜 뜻의 이름이 붙은 영산강(榮山江)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추봉(龍湫峰 : 560m)에서 발원, 서해로 흐르는 강으로,
전체 길이 115.5km, 강이 적시는 유역면적은 3,371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큰 강이다.
영산강은 하류가 넓어서 옛날부터 나주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전라도 남쪽의 중심 도시가 원래는 나주였던 것도
아마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에는 육상교통 사정이 썩 좋지 않아 강과 바다가 운송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다.
(고려태조 왕건이 함대를 이끌고 후백제 영토인 나주에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도 비슷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그만큼 밀려드는 바닷물로 인한 피해도 컸던 것이 사실이어서, 이는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 명분에 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여러 댐과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로 이어지는 영산강 유역 개발이 가시적으로 많은 이득을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영산강의 하천수질은 식수로 쓰기 어려울만큼 나빠져버렸고, 하구를 막아 담수와 해수가 자유롭게 섞이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런 하천생태계는 극심히 파괴되었고 수많은 환경적 외부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 나라의 큰 강들에는 대부분 이런 하구둑이 건설되어 있어서, 모두 똑같은 환경적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근거자료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영산강 하구둑의 배수갑문. 세워져 있는 구조물을 보면 알 수 있듯 총 8개의 육중한 철제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있다.
강 하구둑의 배수갑문은 밀물 때에는 닫아두고, 썰물 때 하구둑의 배수로 높이보다 아래로 해수면이 내려가면
그때 열어서 저장해두었던 담수를 바다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물을 내보내기는 하지만, 자연적인 강의 흐름만큼 내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만든 시설이라서)
어쩔 수 없이 고인 물의 수질이 나빠지게 된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라는 기본적인 이치다. 


배수갑문 시설은 중요한 국가시설이기 때문에 이렇듯 보안벽을 세워두고 경찰이 경비를 선다.
마치 흐름이 막힌 강물이 된 마음으로 배수갑문을 바라보았다.

물을 담아두어서 뒤쪽에 농지를 만들고 그곳에 물을 대어 쓸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모아둔 물은 마실 수 없을 만큼 썩어버리니 참으로 딜레마이다.

 

빈 콘크리트 벙커. 중요 시설물을 해안으로부터의 공격에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곳에 기관총 한 정 정도만 배치해 두면 상당히 강력한 방어거점이 될 것이다. 



목포 방향으로 바라본 방조제.멀리 유달산이 보인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최근 설치했는지 자전거 도로도 만들어져 있었다.


대불공단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대불공단에는 조선소가 들어서 있다.



수로측량점.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만들어놓는 기준 좌표 표시이다.
국립지리원에서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산 정상부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적삼각점, 도로주변에 있는 수준점 등과도 비슷하다.



by 티티 | 2008/08/21 23:34 | 우리 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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