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동대문)의 중층 처마 위로 뜬 달.
왼쪽 하단부터 하층 서까래-하층 부연-하층 막새기와-상층 서까래-상층 부연-상층 막새기와의 순서다.
조선의 수도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 태조 5년인 1396년 창건되었다. 남문이자 정문인 숭례문(崇禮門)과 비교해 중층 우진각 지붕, 다포식 목조 건물인 점은 같으나 약간 규모가 작으며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이 축조되어있다. 숭례문이 조선 초기 양식인 데 비해 흥인지문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되어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의 흥인(興仁)은 한양 도성의 성문 이름에 조선의 건국 철학이었던 유학의 덕목 '인의예지신'의 의미를 불이는 과정에서 첫 번째의 인(仁)이 붙여진 것이다. 다른 도성의 대문들과 달리 넉 자의 이름을 썼는데, 이것 역시 숭례문의 특이한 세로 방향 현판처럼 풍수지리에 따른 것이라 한다. 도성 동쪽의 지기(地氣)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하여, 기운을 북돋는다는 의미로 넉 자의 이름을 사용했고, 아울러 옹성을 축조해 두었다고 한다. 또한 '인'은 오행 중 목(木)에 속하며, 목은 동쪽에 해당하므로 흥인(興仁)은 동방을 뜻하기도 하다.
풍수이론만으로 막상 쳐들어 오는 외적을 막을 수는 없지만, 한양 도성 역시 과거 한국의 읍성(邑城)의 개념에 충실해 군사적으로 성 안을 방어하려는 목적보다는 궁궐의 외성으로써 국왕의 위엄을 드높이고 도성 지역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실제 한양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군사요새는 하남의 남한산성이었다.)